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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제국(28)

詩가 있는 詩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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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완식
기사입력 2021-06-15

▲     ©정완식

 

그녀에게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습니다 

 
그녀를 향한 올곧은 마음은 
지름길일 수도 

 
애달픈 사랑을 알아주길 바라는 
눈물 젖은 길일 수도 

 
예쁜 사랑을 고백할 수 있는 
장미 꽃길일 수도 

 
멀고도 험한 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길이냐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함께 하는 진정한 사랑의 값은 

하나입니다 

 
- 사랑의 원리 -

 

 
29. 나사못의 원리

 

  
MH그룹의 이런 위기상태가 계속되어서는 안될 일이었다 

 
커다란 괴물처럼 그가 도저히 어찌할 수도 없는 거대한 회사였지만,  
그저 하나의 조그만 점처럼 미약한 존재일 뿐인 그였지만, 

 
이십여 년 전 자신에게 위안을 삼아 했던 말,

 

“난 이런 굴욕을 후배들이 겪지 않도록, 후배들에게 부끄러운 선배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던  

 
그 말이 불쑥 떠오르자 가슴 한켠에 숨겨져 있던 창피함이나 부끄러움 같은 것들이 고개를 들고 일어나 전신으로 퍼지면서 연수의 얼굴은 붉게 타오르고 입술이 파르르 떨리기까지 했다 

 
어찌 되었든, 그게 누구이든 연수가 겪은 굴욕을 다시는 그의 후배들이 똑같이 겪도록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었고, 연수는 그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그 무엇이 되었든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방에 오기 전에 우리 정부장, 이차장과 많은 얘기를 나누었고 또 예청에서도 우리 주재원들과 많은 인터뷰를 했다고 하니 내가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 법인 상황은 다 파악했을테고...  

 
우리 법인 얘기를 들으면서 장부장은 어떤 생각을 했나요?” 

 
한길 부사장은 연수가 본사에 돌아가면 어떻게 중국법인의 현 상황을 발표할 것인지 그 속내를 알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연수와 중국사업1팀장이 출장 후에 할 발표내용은 한길 부사장에 대한 경영평가와 인사 조처를 비롯한 이어질 중국법인에 대한 각종 조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연수도 어느 정도의 발표 방향은 알려주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지만, 아직 출장 내용을 정리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리고 북경으로 간 중국사업1팀장과의 조율도 없이 섣불리 발표내용과 방향을 말해주기엔 연수로서도 부담이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 미리 절망감을 줄 필요도 없었고 그렇다고 어떤 기대감을 갖게 할 만한 것도 지금으로선 없었기 때문이었다 

 
“부사장님! 죄송합니다. 

 
아직 다 정리가 안되어서 제 생각을 지금 말씀드리기에는 이른 것 같지만 이곳 중국법인의 상황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어렵고 복잡다단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주재원들이 얘기하는 문제점이란 것들이 대부분 하루 이틀에 걸쳐 발생된 것도 아니고 오랜 시간 쌓여오고 누적된 것들이 대부분이어서...  

 
그런 만큼 지금 당장 어떤 뾰족한 해법을 찾는다는 것도 쉽지만은 않을 것 같고, 그래서 출장보고서 내용도 신중하게 작성할 예정입니다.” 

 
연수는 원론적인 얘기로 한부사징이 기다리는 대답을 슬쩍 비켜나갔다 

 
“난 처음 여기 중국법인에 총경리로 오면서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할 일이 참 많을 것으로 생각했었지요. 명색이 법인의 대표이사이자 법인 총경리이니까... 

 
그런데 내가 여기 와서 한 일이라곤 고작 차 한 대라도 더 팔아보려고 예청의 공장과 지역의 판매본부를 오가며 동분서주한 것 외에는 특별히 할 일이 없었어요. 

 
여기에 두 부서장들도 같이 있어 얘기를 꺼내기 부끄럽지만 내가 이렇게 보잘 것 없고 힘도 없는 존재라는 걸 느껴본 적은 처음이었지요.  

 
난 우리 법인을 정상화시킬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그 일을 하고 싶은데 특별히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일이 있다고 해도 주어진 시간이 부족하고, 난 이 일을 해야 하는데 위에선 저 일이 우선이라 하고... 

 
이곳 중국법인은 내게 나 자신의 한계를 절실히 깨닫게 해주는 곳인 것 같아요.” 

 
한길 부사장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연수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무언가 더 할 말이 있는 듯 했다 

 
“장부장도 인사업무를 해보았으니 어떤 일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들이는 힘과 이동 거리의 곱은 항상 일정하다는 ‘나사못의 원리’, ‘일의 원리’를 잘 알고 있겠지요. 

 
그냥 못 하나를 십 센티만큼 박아넣을 때 100만큼의 힘이 필요하다면 나사못을 그 길이 만큼 박아넣을 때는 스크류를 따라 돌아가기 때문에 이동 거리가 늘어나고, 그만큼 시간이 더 소요되는 대신에 거기에 반비례하여 힘은 훨씬 적게 드는 것처럼, 

 
내가 힘을 충분히 쓸 수 있게 해주던지, 아니면 시간이라도 충분히 많이 주어진다면 어떤 일이든 그 일을 완성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겐 힘을 쓸 여건도, 시간을 벌 수 있는 환경도 주어지지 않더군요.  

 
물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다 핑곗거리에 불과하다고 하겠지만...” 

 
한부사장은 무언가를 직감이라도 하는 듯 연수에게 어설픈 표정으로 아쉬움을 표하며 이번에는 정순일 부장과 이현동 차장 쪽을 쳐다보며 고개를 한 번 크게 끄덕였다 

 
눈치 빠른 정순일 부장이 일어서며 이차장의 어깨를 툭 치자 이차장이 무슨 얘기인지 알았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며 장부장에게 작별 인사를 겸하며 말했다 

 
“저희 둘은 중방 주재원들과 회의가 예정되어 있어 그만 나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두 분 말씀 나누시고 저희가 해야 할 일이 있으면 따로 요청하세요. 그러면 가능한 사항들은 바로 조치해 드리겠습니다.” 

 
두 사람은 번갈아 연수와 악수를 나눈 뒤, 한부사장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고 방을 나갔다 

 

 

註 : 본 시소설은 가상의 공간과 인물을 소재로 한 픽션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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