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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노멀의 철학(김재인 지음, 2020) / 차용국(서평 쓰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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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용국
기사입력 2021-01-06



뉴노멀의 철학(김재인 지음, 2020) / 차용국(서평 쓰는 시인)

 

 

2019년 말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코로나19 전염병이 순식간에 국경을 넘어 지구촌을 혼란에 빠뜨렸다. 인류는 지금 '공포와 놀라움'이라는 느낌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바이러스로 인해 지구는 인적ㆍ물적ㆍ정보적으로 서로 뗄 수 없게 엉켜있는 연결망이라는 사실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6쪽). 지구라는 지도에 경계의 선을 그어 만든 개별 영토의 안전과 번영은 허상이었다. 우리는 개인과 개인, 지역과 지역, 그리고 국가와 국가가 그물코처럼 연결되어 긴밀하게 상호 영향을 주고 받는 세상의 실체를 보았다. 안전에 관한 인식과 대응도 개인이나 지엽적인 개별 노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주민과 외국인과 난민에게도 선행을 베푸는 것은 현 상황에서 그렇게 해야만 모두가 안전할 수 있다는 '느낌의 합의'가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전에는 추상적으로만 보였던 협력과 연대, 상호 신뢰와 투명성 말고 다른 해법을 찾기는 어렵다(7쪽). 우리는 공동 운명체라는 인식, 함께 생존하고 번영하기 위한 인식과 방식의 전환이 요구된다.

  

인간으로서의 존엄, 즉 인권의 가치에 관한 인류의 노력은 지난한 과정을 거쳐오고 있다. 그동안 인권 문제는 주로 개별 국가의 문제로 다루어 왔다. 물론 인권에 대한 유엔의 역할과 국제 협력이 강화되고는 있지만, 개별 국가의 인권 보장 문제에 개입하는 데는 여전히 제한이 있다. 여기에 전염병의 창궐과 팬데믹 상황이 더해지면서, 서양의 근대 이래로 인간이 획득했던 소중한 가치들은 이 새로운 상황에서 새롭게 자리매김될 운명에 처했다. '인권 대 안전'이라는 근대적 대립 도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으며, '안전 대 인권'을 모색해야 한다(6쪽). 안전이 우선이냐, 인권이 우선이냐의 대립 구도로는 해결할 수 없다. 안전과 인권은 어느 하나를 취하고 버릴 수는 없는 문제다.

  

안전과 인권에 대한 인식은 개인마다 사회마다 다르다. 다툼의 상당 부분은 안전에 대한 느낌 차이 때문에 생겨난다(31쪽). 안전과 인권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임에는 틀림없지만, 그것을 수용하고 구현하는 인식과 방식은 특수하다. 각 사회마다 특수한 역사적ㆍ사회적 배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한국의 신속하고 치밀한 대응은 전 세계로부터 찬사를 들었지만, 한편에서는 한국의 방역 방식이 인권침해의 소지가 크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45쪽). 같은 상황을 두고 상반된 시각을 보이는 건 철학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문제 상황이다. 이에 대해 좀 더 고찰하기 위해서는 특히 '국가(정부)의 역할'과 '인권'을 고려해야 한다(50쪽). 방역 상황에서 잦은 충돌을 빚고 있는 '프라이버시'와 '안전'이라는 가치의 갈등도 이 맥락에서 재해석되어야 한다(53쪽).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은 과학과 정치가 맞물린 융합의 영역일 뿐만 아니라 가치와 효율에 관한 철학적 물음이기도 하다.

  

감염병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아무리 재수 없다고 생각될지라도 나도 남에게 감염될 수 있고, 아무리 선의를 갖고 있더라도 남을 감염할 수 있다는 '예상 불가능한 우발성'이다(59쪽). 누구나 가해자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은 두려움을 넘어 공포의 대상이지만, 이 상황을 극복하는 것도 사람과 사람 간의 상호 관계에 기댈 수밖에 없다. 감염병 유행이라는 공중 보건 위기를 '함께'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동료 인간에 대한 존중과 연대, 호혜성이 요구된다(60쪽). 이러한 가치들은 신뢰라는 기반 위에서만 구축 가능하다. 아무리 기술적으로 뛰어나더라도 보안과 신뢰가 확보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55쪽). 정부가 의사결정의 투명성, 솔직한 소통, 신속한 대안 마련 등을 통해 시민들과 새로운 거버넌스의 실험을 함께 하고 있는 점도(61쪽) 신뢰 확보 방안의 모색으로 볼 수 있다. 거버넌스는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주어진 자원 제약하에서 모든 이해 당사자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투명하게 의사 결정을 수행할 수 있게 하는 제반 장치를 말한다. 상호 신뢰의 확보는 거버넌스의 토대가 되며, 신뢰 가능한 영토를 만드는 것이 현재 우리의 과제다(62쪽). 우리는 안전과 인권을 동시에 보장할 수 있는 거버넌스가 작동하는 영토에서 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이제 지구는 하나의 공동체로 거듭났다. 역사상 처음으로 닥친 문제 상황, 즉 전 지구적 감염병, 인공지능, 기후위기의 결합은 협력과 연대가 아니고서는 해결할 수 없음이 판명되고 있다. 지구 시민들 모두가 협심해서 새로운 지구적 거버넌스를 만들어내야 하며, 그 속에서 서양 근대의 가치들이 재편되고 재해석되어야 한다(95쪽). 무엇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를 함께 풀어가야 한다. 빼앗는 것이 아닌 나누어주는 것이 새로운 거버넌스의 핵심이 되어야 할 것이다. 저자는 이런 거버넌스를 '공동주의(commonism)'라고 명명한다(96쪽). 저자는 공동주의라 부르는 거버넌스 공동체를 위한 철학적 논의와 그 구현을 위한 한국의 교육제도 개편안 등에 관한 방안을 제시한다. 미래의 발전 방향이란 점에서 경청할만 하지만 이 글에서는 논의를 생략한다. 특히 한국의 교육제도는 그 자체만으로는 엄청난 파급력을 가지고 있다. 한국의 교육제도는 그 자체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과제이다. 한국의 교육제도는 정치ㆍ경제 ㆍ사회ㆍ문화 등과 그물코처럼 얽혀있다. 깊고 넓은 통섭적 연구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다. 이 책은 그것에 관해 연구한 것이 아니라 코로나19 이후 우리가 살아갈 세상과 삶의 방식에 관한 철학적 인식의 전환을 제시한 저술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부제가 '대전환 시대를 구축할 사상적 토대'인 것처럼.

▲ 서평쓰는 시인 차용국     ©강원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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