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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패닉(슬라보예 지젝 지음, 강우성 옮김,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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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용국
기사입력 2020-12-22

▲ 팬데믹 패닉 표지  © 강원경제신문



팬데믹 패닉(슬라보예 지젝 지음, 강우성 옮김, 2020)

 

차용국(서평 쓰는 시인)

 

 

우리는 코로나19로 불리는 바이러스가 가져온 팬데믹을 경험했다. 팬데믹은 전염병 감염의 최고 단계인 세계적인 대유행 상황을 말한다. 2020년 12월 8일, 영국을 필두로 미국 등에서 백신 접종을 시작하고 있지만, 아직 이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이후의 세상은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세상과는 다른 세상이 될 것이란 말을 종종 들어왔다. 무엇이 어떻게 변하여진 세상이란 말인가? 무엇을 어떻게 변화시킨 세상이란 말인가?

 

불가리아 출신 유전학자인 게오르기 마리노프는 사회질서의 붕괴를 막으려면, 국민기본소득 지급, 집세와 주택융자금과 부채 등의 상환 중단, 보건의료제도와 다수의 다른 핵심 산업들 중 민영화된 부문들의 국유화, 식량의 생산과 배급에 대한 중앙집중식 정부 통제 같은 조치들이 필요하다(13쪽)고 한다. 이 책의 저자 슬라보예 지젝(Slavoj Zizek, 1949~ )은 위 목록에 농업, 에너지, 수도 등 필수부문 종사자들의 정상적 작업 보장을 위해 그들이 최대한으로 격리될 조치가 필요하다(14쪽)고 한다. 게오르기 마리노프와 슬라보예 지젝이 그려내는 이와 같은 조치들은 팬데믹 상황이 장기화 되면서 매우 설득력이 있어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패데믹은 예고 없이 또 발생할 것이고, 이와 같은 조치들에 최적화된 사회시스템이 상시 작동하는 사회가 도래할 수 있다는 함의다. 

 

이 책은 코로나19 이후 인류가 맞게 될 상시적 바이러스 사회에서 국가의 공적 기능이 커지고 우리의 생명과 생존이 함께 추구될 수 있는 평등한 공동체를 그리는 일에 많은 논의가 할애되어 있다(195쪽). 지젝은 2020년 12월 21일 한겨레신문 기고문에서, '만약 백신 이후에도 또 다른 대유행이 발생한다면, 그때 쟁점은 정신적 고통, 특히 우리가 과거 일상적으로 향유하던 사회적 삶이 소멸해가는 데 따른 정신적 고통이 될 것'이라며, 조르조 아감벤의 국가권력 비판을 비판한다. 아감벤은 그저 또 다른 유행성 독감의 변종인 감염병으로 추정되는 코로나바이러스를 막기 위해 취해진, 광적이고, 비합리적이며, 전혀 근거 없는 비상조치들을 개탄했다. 아감벤은 이 터무니없는 과도한 대응이 벌어진 주된 이유가 예외 상태를 일상적인 지배의 패러다임으로 삼으려는 경향에 있다고 본다. 비상 상황에서 내려진 조치들 덕분에 정부는 행정명령을 통해 우리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할 수 있다(96쪽)는 점을 우려한다. 지젝은 아감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것이 인간임을 포기한다거나, 우리가 누리던 사회적 자유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동일자 한겨레신문 기고문에서 아감벤이 중요시하는 열린 사회적 공간을 앞으로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회적 삶의 소멸을 그 영점까지 겪어야만 한다. 그렇게 할 때만 우리는 앞으로 도래할 새로운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반면, 과거 오래된 삶의 방식에 머무르고자 할 때, 우리는 새로운 야만에 직면한다. 개인의 자유와 존엄을 주장하며 국가 방역 조치에 항의하는 미국과 유럽의 시위대가 그 야만의 한 예라고 하며, 과거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을 꿈꾸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수행해야 하는 어렵고도 고통스러운 임무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완전히 새로운 사회적 삶의 방식을 구축하고 발명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지젝이 말하는 새로운 사회적 삶의 방식이란 무엇인가? 공산주의 체제를 말하는가? 지젝이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이 공산주의의 형태를 초래할 것이라고 거듭 시사(121쪽)한 점에서 더욱 그렇다. 물론 지젝이 생각하는 공산주의자는 기존의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오늘날의 공산주의자는 어째서 우리의 자유주의적 가치들이 위협에 처했는지 진지하게 탐구해 오로지 근본적 변화만이 그 가치들을 지켜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바로 그 자유주의자들이다(63쪽). 정보가 공유되어야 하고, 계획들이 충분히 조정되어야 하며, 국가의 직접 개입과 다른 국가들과의 협력도 추구해야 한다. 이것이 지젝이 오늘날 요구되는 '공산주의'라는 말로 뜻하는 모든 것이다(88쪽). 나는 솔직히 지젝이 시사하는 공산주의가 팬데믹 상황에 처해있는 사회의 긴요한 일시적인 조치일지, 근본적으로 변화할 새로운 사회일지 궁금하다.

  

코로나19가 중국 우한에서 발생하였을 때 중국 정부가 취한 조치는 정보를 통제하는 일이었다. 홍콩의 언론인 베르나 유가 지적한 것처럼, 중국이 언론의 자유를 숭상했다면 코로나바이러스 위기는 없었을(23쪽) 지도 모른다. 이번 위기에서 보았듯 중국이 자국 인민들의 자유를 억누를 때 재난이 생겨날 수 있다. 국제사회가 이 문제를 좀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때다(24쪽). 감염병을 처음 발견한 리원량 의사가 당국에검열을 당한 것처럼, 중국 인민의 언론과 표현의 자유와 같은 기본권을 존중하지 않았다. 코로나19가 가져온 팬데믹과 중국의 인권 문제를 연결해서 보는 것이 낯설어 보이기도 하지만 매우 긴밀한 관계가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죽음을 바로 앞둔 병상에서 의사 리원량은 건강한 사회에는 적어도 하나 이상의 목소리가 존재해야 한다(26쪽)고 말했다. 그는 정치적인 공론의 장이 필요함을 말하지 않았다. 단지 그의 호소는 어느 사회이건 적어도 다른 목소리가 들려야 한다는 보편적인 의미로 느껴진다. 단지 시민들이 비판적 반응을 나눌 수 있는 개방된 공간을 요구할 뿐이다. 공포를 막기 위해 국가가 소문을 통제해야 한다는 생각을 반박할 수 있는 핵심 주장은 이 통제 자체가 불신을 퍼뜨리며 그로 인해 더 많은 음모론들이 생겨난다는 사실이다. 오로지 보통 인민과 정부 간의 상호 신뢰만이 이런 사태를 방지할 수 있다(26쪽). 신뢰는 결코 급박한 상황에서 급조되지 않는다. 일방의 명령이나 주장이 신뢰를 담보하지도 않는다. 신뢰는 사실의 공유에서 시작된다. 개인 관계의 차원을 넘어 사회적 신뢰도 마찬가지다. 사실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거나 한 가지 해석만이 허용되는 곳에서는 신뢰가 형성될 수 없다. 그래서 신뢰는 사회시스템의 결과물이다. 팬데믹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팬데믹 상황이란 명분으로 군사적 규율과 같은 일방통행식의 조치들을 허용하고 수용해야 할까? 눈에 보이지 않는 적에 대한 공포는 극단적인 생존주의(survivalism) 논리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을까? 지젝은 팬데믹 상황의 가장 큰 위협은 공공연한 야만, 대중적 무질서를 동반한 거친 생존주의 폭력, 공포에 찬 린치 같은 짓으로 퇴행하는 것과 같은 공공연한 야만보다 인간의 탈을 쓴 야만이 더 두렵다(103쪽)고 말한다. 지젝이 진정 우려하는 것은, 유감과 때로는 동정심도 곁들여져 시행되지만 전문가의 견해로 정당성을 얻는, 저 가차없는 생존주의적 조치들 말이다. 세심한 관찰자라면 권력을 쥐고 있는 자들이 우리에게 말을 건네는 방식에서 느껴지는 어조의 변화를 금방 눈치챘을 것이다. 그들은 평정과 자신감을 내비치려고 노력할 뿐 아니라 끔찍한 예측들을 주기적으로 입에 올리고 있다(108쪽). 이런 상황은 최근 팬데믹을 경험하면서 흔히 목격하는 현상이다. 우리는 매일 그들이 하달하는 행동지침에 메어 산다. 진짜 경계하는 것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그들이 정한 규칙이다. 이 규칙을 따르지 않으면 차별의 올가미를 쓸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중국에서 했던 방식대로 국가기구가 우리 삶을 완전히 통제하는 일을 의료상 불가피한 조치로 묵묵히 받아들일 것이다. 생존을 다투는 공황 상태는 대단히 탈정치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같이 싸우는 동지가 아니라 치명적 위협으로 느끼게 만든다(122쪽). 이제 우리가 경계하는 것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사람이다. 바이러스는 계획과 전략을 갖추고 우리를 무찌르려는 적이 아니라, 어리석게 자가증식하는 한갓 메커니즘일 뿐이다. 이 점이야말로 우리의 생존 강박을 한탄하는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사실이다(130쪽). 지젝은 우리는 인류를 자기파괴에서 구하려는 노력을 통해서 새로운 인류를 창조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오로지 이 치명적 위협을 통해서만 통합된 인류를 그려볼 수 있다(130쪽)고 한다.

  

이 책의 옮긴이 강우성 교수는 단호하고 분명하게, 지젝은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이 바이러스라는 자연적ㆍ우발적 존재가 아니라 차별과 배제의 논리로 바이러스의 창궐과 확산을 악화시키는 우리의 사회적 시스템이라고 못 박는다. 바이러스가 인류에게 이러한 정치적 혁명의 계기를 마련해줄지 아니면 차별과 배제가 교묘하게 강화된 새로운 야만의 시대로 귀환할지는 정말로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고(195쪽). 그렇다. 우리는 순진하게 팬데믹 상황과 대책이 과학이라는 전문적인 영역이라고 치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진짜 정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권력을 움켜쥐고 국민을 통제하려는 자들의 위선적 시스템에 동조하느냐, 국민과 국제 사회에 정보를 공유하고 신뢰를 연대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느냐는 진짜 정치.

▲ 서평쓰는 시인 차용국     ©강원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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