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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회 코벤트가든문학상 대상 - 명태 / 이대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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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옥
기사입력 2020-12-05

▲ 시인 이대근  © 강원경제신문



명태 / 이대근  

 

푸른 바닷속 깊은 곳에서

나는 근원을 떠나 멀리서 인내의 시간에 초연할 때

꾸덕꾸덕한 몸 비틀림에도

모질게 내실 다진 가치 믿고

달라질 수 없는 본질로 꼿꼿이 세운 기계였었어

 

서로를 부둥켜안고 차가운 바람 소리로 말 벗하며

스무 번이나 얼림과 풀림에 익숙한 처연함으로

나는 스스로 긍정의 이름을 덕장에 걸고

붙들고 버티지 않아도 될

자유를 위해 스스로 떠나고 싶은 오기였었어  

 

솔바람 이고 가는 거친 풍파

모진 바닷바람과 장열한 태양 아래

세상의 고뇌 감내하는 본질로

기어코 켄버스 위에 변신의 몸으로 드러누웠을 때

아픔을 이고 있는 그대가 더 뜨겁게 그리웁다.  

 

[심사평]  침묵은 더이상 금이 아니다. 죽어서도 소리없는 소리 찾아 입을 벌리고 있다. 아우성 치듯 명(命)없는 눈 또한 뜨고 있다. 들리지 않는 소리는 진동하고 보지 못하는 동공속으로 세상은 철떡같이 그림자되어 붙어있다. 우리는 변화를 안다. 그리고 변화는 있다. 그래서 변화한다. 물질 문명과 자연 우주 만상. 사람과 생태계의 질적.양적 빛깔 또한 그렇다. '꾸덕꾸덕한' 은 바다에서 생태하는 습진習陣의 명태에 엷은 거죽의 쫀득한 느낌을 표현하였다. 악센트있는 부사를 사용한 점도 향토적 정서로 묻어난다. 무리지어 무리속에 여념없이 밀려다니며 생존의 법을 익혀 가는건 스스로 헤쳐 나가는 이치를 습하는 것이다. 결국 혼자만이 해결해 가는 타고난 능력이라서가 아니다. 오기발동, 함께 하는 무리중에 옆으로 보호 받으며 좌충우돌을 피하는 칙(則)을 알게 되고 앞으로 나아가는 동명의 운으로 삶, 살아감이다. 인간 세상이 서로간 뿐 아니라 인간이 자연 생물에 저지르는 덫에 걸려서 또 다른 환경에 들어선다. 그의 생애가 헤엄으로 심해바다를 누비는 것으로 끝난다면 무의미한 생존이겠다. 어떤 매개체의 역할로 맞이한 최후의 희생이 새로운 문명에서 녹여주어 재생되는 환생으로 간다면 족할 운명일 수도 있는 것이다. 무엇하나도 혼자서 되는 것은 없다. 착각이다. 다만, 착각도 때때로 웃음 짓는 행복을 주니 할만 하다. 시인이 환경에서 가져온 명태가 제대로 명태로 되어 간 과정을 앞에 두고 잠시의 순간을 사유한 시詩는 수직선 평행선을 떠나 그들의 본질을 말하고 싶음이다. 눈도 눈이려니  때론 던지는, 던져지는 것도 버리고 버려지는 것도 깨달음의 연속이라 고요속에 마음 빼앗겨도 슬프지만은 않을 것이다. 강열한 세상에 오롯한 가장자리 하나 내어 장열하다. 그렇다  할 "아픔을 이고 있는 그대가 더 뜨겁게 그리웁다." 에서 잘 묘사되고 있다. 생물간의 먹잇감도 단계별이다. 인간의 먹이로 까지 환생하는 중, 앞에 놓인 명태를 두고 한 '세상의 고뇌 감내하는 본질' 로 이어보는 시심에 동심(同心)의 표를 더한다.

 

이대근 시인은 토지문학회원으로 통영에 거주하고 있으면 시집으로는 「살았기에 하늘을 본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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