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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대한 오해(스티븐 제이 굴드 지음, 김동광 옮김, 2010) / 차용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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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용국
기사입력 2020-12-03

▲ 인간에 대한 오해(스티븐 제이 굴드 지음, 김동광 옮김, 2010) / 차용국  © 강원경제신문



인간에 대한 오해(스티븐 제이 굴드 지음, 김동광 옮김, 2010) / 차용국

 

10여 년 전 이 책을 처음 읽었습니다. 당시 인류의 문화가 진화의 산물이라는 관점에 공감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진화 지식의 기반이 되는 진화생물학에 관한 여러 책을 읽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습니다. 물론 이 책은 진화생물학을 설명하기 위해서 쓴 책은 아닙니다. 이 책은 인종 차별이나 IQ 테스트 등에 관한 서열화의 오류와 편견에 관한 책입니다. 그럼에도 이 책은 진화생물학의 지식과 이론을 기저로 내용을 전개하고 있기에 이 분야에 일천한 지식밖에 없는 비전공자로서 이해가 쉽지 않아 책장을 넘기는데 애를 먹었습니다.

 

그런데 왜 지금 이 책을 다시 읽는가? 요즘 코로나 19로 대외 활동을 자제하면서 독서의 시간이 많아진 면도 있고, 주변이나 SNS 등에서 많은 논객들이 자신의 견해에 객관적ㆍ합리적이란 이름표를 붙여 주장하는 사례를 수없이 목격하면서 그들이 말하는 객관적이니 합리적이니 하는 언술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었고, 이 책이 이 문제에 관한 깊은 성찰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굴드는 공평무사함이란(설령 바람직하다 해도) 어쩔 수 없이 배경, 요구, 신념, 신앙, 그리고 갈망 등을 가지고 있는 인간으로서는 달성할 수 없는 무엇이라고 합니다. 학자가 상상으로라도 완전한 중립성을 획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는 개인적 선호와 그 선호가 낳는 영향력에 더 이상 주의를 기울이지 않게 될 것이고, 따라서 자신의 편견에 휘둘리는 희생자로 전락할 것(38쪽)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객관성이란 선호의 부재가 아니라 자료의 공정한 처리를 통해 정의되어야 하고, 자신에게 내재한 객관성에 대한 믿음만큼 고약한 자만심은 없다(38쪽)고 경고합니다. 객관성이 가치중립적일 수 없고, 개인적ㆍ사회적 선호가 개입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며, 마땅히 자신의 선호와 그 영향력에 주의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우리는 과학이 제시한 데이터와 그 데이터의 해석 결과에 관해서 강한 믿음을 가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데이터란 특정의 제한된 요인 내에서 의미 있는 해석이라는 점에 주의해야 합니다. 요인이 변하면 다른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데이터의 해석 결과보다는 그러한 해석의 결과가 나오게 된 요인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과학적 데이터가 가치중립적이라기보다 사회적임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과학은 데이터의 비율을 사회적 중요성으로 환원시키기 위해 정보를 제공(70쪽)할 수 있습니다. 과학적인 결정론도 독립적이라기보다 사회적입니다.

 

과학적 결정론의 그릇된 사회화가 유사과학입니다. 유사과학은 과학적인 진리라고 간주하는 믿음 체계를 가진 입장을 의미합니다. 유사과학적(pseudoscientific) 주장은 사회적 유용성과 긴밀하게 결부되어 있습니다(16쪽). 그래서 때로는 과학이란 간판을 내걸고, 시류에 편승해서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전형적인 사례가 '생물학적 결정론(biological determinism)'입니다. 인류는 생물학적 결정론의 허구에서 태생한 뿌리 깊은 오류를 묵인하고, 오히려 오류의 범주를 확대하고 왜곡합니다. 범주 오류(category mistake)는 논리적으로 다른 범주에 속하는 것을 같은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오류입니다. 인간의 사고 중에서 가장 일반적인 오류입니다. 개인과 집단은 오류를 의심 없이 받아들여 믿음을 형성하고 전파합니다. '생물학적 결정론'의 허구가 사회적 편견으로 전화한 것입니다.

 

생물학적 결정론자들은 흔히 과학이 사회와 정치의 오염에서 자유로운 객관적 지식이라는 전통적 권위에 호소하며 자신들의 주장을 펴왔다(65쪽)는 점입니다. 예컨대 흑인과 백인의 두개골 크기를 분석한 많은 결과가 백인의 우월성과 흑인의 열등성을 입증하는 그럴듯한 증거로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두개골의 용량은 그 화석이 살던 시대와 지역적 환경 등에 따라 다소간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며, 더군다나 그 차이가 있다하더라도 인종의 우열을 단정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흑인이 주로 살던 열대 또는 아열대 지역의 아프리카와 백인이 주로 살던 습하고 추운 유럽 지역 생물의 골상이나 크기가 다른 이유를 인종 간 우열의 의미로 해석하는 것은 전혀 객관적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더욱이 피부색이라는 것도 생존과 유전을 위한 환경 적응의 한 사례에 불과하다는 점입니다. 흑인이 유럽으로 건너가 수세대를 거치면 하얀 피부색으로 변신하는 것처럼, 백인도 아프리카 지역에 이주하여 수세대를 거치면 검은 피부색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화생물학은 인종 사이의 극히 작은 유전적 거리 속에서, 그리고 인간 공통의 기원인 지질학적 과거 속에서 인류의 단일성에 대한 여러 가지 원천을 발견했습니다(566쪽). 인류 진화의 역사를 거꾸로 돌려 찾아가면 한 쌍의 태초의 우리 조상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태초에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18세기와 19세기에 극심한 인종 차별을 기억합니다. 지금도 그 여파는 도처에서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고, 때로는 조종하고 있습니다. 그 기저에 유전적 결정론이란 간판을 걸고 자행한 사회적 편견이 있습니다. 유전적 결정론은 서열화와 차별화된 능력에 대한 신념과 결부된 때에만 특정 집단에 열등성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도구가 됩니다(486쪽).

 

인간 사회에서 신념을 만들고, 그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는 대부분 지도자와 지식인입니다. 그래서 과학이 사회적 편견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사회적 지도자와 지식인들이 인종 서열화의 타당성을 의심하지 않는 문화적 환경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먼저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85쪽). 그들이 과학의 사회적 편견을 묵인하거나, 동조하거나, 심지어 조작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오죽하면 미국 흑인 노예 해방의 선구자로 추앙받고 있는 링컨조차도 '흑인의 평등이라고! 허튼 소리! 우주를 지으시고 그것을 지배하는 위대한 신의 통치하에서 언제까지 무뢰한들이 이 따위 저속한 선동을 계속 외쳐대고, 천치들이 괴상한 주장을 떠들어 댈 것인가(88쪽)'라는 메모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20세기라고 해서 과학적 결정론의 사회적 편견이 나아진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지능 테스트의 서열화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흔히 목격할 수 있습니다. IQ 테스트의 두 가지 중요한 요소는 평가와 서열화입니다. 즉 IQ 테스트에 의해 표현된 정신연령으로 척도를 결정하고, 순서를 매기고, 요인분석에서 나타난 지능 테스트 사이의 상관관계를 분석하는 것입니다(53쪽). 이렇게 나온 IQ가 개인 간, 집단 간 서열화의 근거가 될 수 있을까? IQ가 99인 사람과 130인 사람은 생물학적인 우열이 있는가? 백인 집단이 흑인 집단보다 IQ 점수가 높게 나왔다고 해서 백인이 유전적으로 우수하다고 일반화 할 수 있는가? 이 모든 대답은 '그렇지 않다'입니다.

 

인간은 각각 고유의 유전적 형질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사회문화적인 요인이 복잡한 상호작용을 하면서 성장합니다. 우리는 원칙적으로 그 사람의 행동을, 멀리 떨어진, 근본 원인들의 양적 퍼센티지로 분해할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의 성인은 그만의 고유한 수준으로, 그리고 그의 고유한 총체성으로 이해되어야 하는 창발적 실체입니다. 여기서 제기되는 주제는 교정가능성과 유연성이지 퍼센티지로의 분할이라는 잘못된 개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34쪽).

 

IQ 테스트의 선구자인 비네조차 IQ를 선천적인 지능으로 인정하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IQ를 정신적 가치에 따라 모든 학생을 서열화하는 일반적인 장치로 사용하는 것도 거부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척도를 오직 교육부장관으로부터 위임받은 한정된 목적에 활용하기 위해서만 고안한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특별한 교육을 필요로 하는 능력이 뒤떨어진 아이들ㅡ오늘날 우리가 학습불능아 또는 약한 정신지체아라고 부르는 아이들ㅡ을 식별하기 위한 실용적인 지침으로 국한(261쪽)했던 것이지 IQ 점수로 인간을 서열화 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의 뇌는 지능의 생물학적 기초이며, 지능은 문화의 기초입니다(515쪽). 우리는 지능을 토대로 문화를 구축합니다. 문화의 영향력이 개인과 집단을 움직입니다. 인간 사회는 생물학적 변화의 결과가 아니라 문화적 진화에 의해서 변화한다(514쪽)는 함의입니다. 문화적 진화는 생물적 진화와 달리 '라마르크적' 빙식으로-획득형질의 유전에 의해-작동하기 때문에 무척 빠른 속도로 진행될 수 있습니다. 한 세대가 배운 것은 어떤 것이든 인간이 문화적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해 개발된 문서, 교육, 터득, 의식, 전통, 그 밖의 수많은 방법들에 의해 다음 세대로 전달됩니다(514쪽). 문화적 진화는 다윈주의적 진화보다 훨씬 빠르기 때문에 그 영향력은 인간 집단 내에서 나타나는 행동의 다양성 속에 널리 퍼져 나갑니다(518쪽).

 

과학은 예감, 전망, 그리고 직관에 의해 진보합니다. 과학이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것은 절대 진리에 좀 더 가깝게 다가가기 때문이 아니라 과학에 큰 영향을 미치는 문화적 맥락이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사실이란 순수하고 더럽혀지지 않은 정보의 조각이 아닙니다. 문화 역시 우리들이 보는 대상과 그 방식에 영향을 줍니다. 더욱이 이론은 사실로부터 얻어지는 냉엄한 귀납이 아닙니다. 가장 창조적인 이론은 사실에 상상적 관점이 가해진 것이며, 그 상상력의 근원 역시 대단히 문화적인 것입니다(68쪽). 결국 생물학적 결정론에 근거한 사회적 편견은 왜곡된 집단 문화의 표상일 뿐입니다.

 

굴드는 '과학은 새로운 발견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이끌어낸 결론을 비판하는 작업에 의해서도 진전한다(21쪽)고 말합니다. 그는 이런 맥락에서 이 책을 썼습니다. 우리 문화 속에 숨어 있는 유전적 결정론의 허구와 폐해를 끌어내 고발하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그는 '과학은 추가가 아니라 교체에 의해 진보한다고 말합니다. 용기가 항상 가득 차 있다면, 썩은 사과는 더 나은 사과가 추가되기 이전에 반드시 폐기되어야 한다(510쪽)'고 선언합니다. 특정인 행동 속에서 인간 본성의 유전적 기초를 찾는 유전적 결정론은 생물학의 잘못된 이론을 대표합니다(566쪽). 마땅히 폐기되어야 할 사과입니다.

 

굴드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지질학과 동물학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그는 고생물학과 진화생물학자였고, 과학사도 공부했으며, 사회과학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는 과학 자체를 사회로부터 분리된 객관적이고 균일한 것으로 보지 않고, 사회적ㆍ역사적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이 책은 이런 맥락에서 과학과 사회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의 원제가 <The Mismeasure of Man> 입니다. 인간에 대한 잘못된 척도가 중심 내용입니다. '인간'을 잘못된 척도(mismeasure)로 결정하는 것은 이중의 잘못을 범하고 있다는 함의입니다.

 

굴드는 철저한 다윈주의자입니다. 우리는 진화론자를 신의 창조와 사랑마저 부정하는 영혼 없는 인간으로 오해하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진화 자체가 생명의 존엄함이기 때문입니다. 수억 년을 유전하며 존재하는 지난한 생명의 역사가 사랑 말고 무엇이란 말인가? 진화는 경이로운 휴먼드라마입니다. 생명의 비밀을 연구하는 생물학이 사회적 편견을 뒤집어 쓴 문화로 변질되도록 방관하고 방치하는 것은 생명에 대해 죄를 짓는 일입니다. 굴드는 이 책 마지막을 다윈의 글을 인용하며 마무리 합니다. ''빈곤의 비참함이 자연법칙이 아니라 우리들의 사회제도에 의해 비롯되었다면, 우리의 죄는 중대하다.''

▲ 서평쓰는 시인 차용국     ©강원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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