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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의 풀잎(박봉우 시집, 2008) / 차용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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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용국
기사입력 2020-11-15

▲ 황지의 풀잎(박봉우 시집, 2008) / 차용국  © 강원경제신문


황지의 풀잎
(박봉우 시집, 2008) / 차용국

  

대전시청역에서 전시(2020.11~12)하고 있는 문예마을 시화전에서 만난 박나라 시인이 박봉우 시인의 <황지의 풀잎>을 보내주었습니다. 박나라 시인은 박봉우 시인의 장남입니다. 우리는 잠시 박봉우 시인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박나라 시인은 선친에 관한 많은 추억이 있겠지만,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란 고작 박봉우 시인의 시 몇 줄의 기억과 경의선 임진강역에 있는 그의 시비를 본 정도였기에 금세 바닥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강력한 기억으로 생생하게 남아 있는 시어가 있습니다. 바로 '내 직업은 조국'입니다. 얼핏 들으면 식상한 애국시를 연상할 수도 있을 듯도 한 시어이지만, 박봉우 시인의 삶의 모든 것을 대변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시어는 1969년에 발표한 ''잡초나 뽑고''의 일부입니다. 박봉우 시인의 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시의 시작과 발표 시기를 섬세하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모든 인간은 살아가는 시대의 정서와 사상에 영향을 받으며 자신의 삶의 길을 선택합니다. 몇 가지의 선택지가 있을 것입니다. 순응, 저항, 그리고 제3의 새로운 길입니다. 직업이 조국이라는 박봉우 시인은 어떤 길을 선택했을까?

 

오늘밤 머언 별들을 보면서

나의 직업은

조국.

 

연탄 냄새 그득 풍기는

우리의 사회에

선량한 나의 가정은

가을

빈 주먹.

 

갈라진 가슴팍에

우거진 잡초들과

사상.

 

그 속에 우리집이 있다

그림 역사가 있다.

 

오늘의 나의 손은

현실을 뽑으며

진저리 나는 나의 행동에

추파를 던지는 속셈이다.

 

(''잡초나 뽑고'' 전문)

 

1969, 직업이 조국인 박봉우 시인은 '머언 별들을 보면서' '갈라진 가슴팍에 / 우거진 잡초'를 뽑으며 살아갑니다. 1969년은 박 시인이 선택한 조국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625전쟁의 상흔을 치유하고, 419혁명의 혼이 살아있는 조국이 아니었습니다. '연탄 냄새'처럼 불의와 위험한 극단적 사상이 잡초처럼 난무하고 있는 사회였습니다. 박 시인은 별처럼 먼 조국을 생각하며 잡초를 뽑으면서 살아갑니다. 박 시인의 조국 사랑은 ''휴전선''에서 시작합니다. 이 시는 195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작품입니다.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 번은 천둥 같은 화산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자세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저어 서로 응시하는 쌀쌀한 풍경. 아름다운 풍토는 이미 고구려 같은 정신도 신라 같은 이야기도 없는가. 별들이 차지한 하늘은 끝끝내 하나인데...... 우리 무엇에 불안한 얼굴의 의미는 여기에 있었던가.

 

모든 유혈은 꿈같이 가고 지금도 나무 하나 안심하고 서 있지 못할 광장. 아직도 정맥은 끊어진 채 휴식인가 야위어가는 이야기뿐인가.

 

언제 한 번 불고야 말 독사의 혀같은 징그러운 바람이여. 너도 이미 아는 모진 겨우살이를 또 한 번 겪으라는가 아무런 죄도 없이 피어난 꽃은 시방의 자리에서 얼마를 더 살아야 하는가 아름다운 길은 이뿐인가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 번 천둥 같은 화산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자세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휴전선'' 전문)

 

1934년 광주에서 태어난 박봉우 시인이 22살이 되는 195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휴전선''은 박봉우 시인의 대표작이 되었습니다. 경의선 임진강역에 있는 그의 시비에도 ''휴전선''이 새겨져 있습니다. 문단 데뷰작이 대표작이 되는 경우는 흔치 않는 일인데도 말입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은 비록 많은 부침이 있기는 하지만, 남과 북의 정상이 서울과 평양을 방문도 하고, 판문점에서 양측 정상이 만나 평화와 상생을 논의하기도 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1956년 시대상에서는 감히 남북의 평화니 상생이니 하는 말 자체가 자칫 오해를 불러올 수 있는 금기였습니다. 반공과 멸공의 시대였습니다.

문학계도 크게 다를 바 없었습니다. 이 시집 <황지의 풀잎> 편집 후기에서 조태일 시인은 ''휴전선''에 관해서 '전쟁이 휩쓸고 간 폐허 속에서 대부분의 시인들이 기진맥진한 채 꽃과 여인과 술과 혹은 병든 자아의 한구석을 노래하며 자위하고 있을 때 박봉우 시인은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번은 천둥 같은 화산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자세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라고 우리의 뼈아픈 분단의 현실과 민족의 갈등을 온몸의 사랑으로 놓치지 않고 노래함으로써 민족시인으로서의 자리를 튼튼히 하였다'고 썼습니다. 이보다 적절한 평가는 더는 없을 듯합니다. 민족의 상생과 공동체의 정서를 깊은 시심으로 형상화한 ''휴전선''은 당시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또한 ''휴전선''의 특징 중에 하나는, 산문시의 형식을 이루고 있음에도 운율성이 풍부하다는 점입니다. 이 시를 소리 내어 읽어보면 힘찬 생동감을 느낄 수 있는데, 이는 우리말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3음보, 4음보 시어의 절절한 배치에서 생성되는 자연스러운 리듬이라 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박봉우 시인은 한 세대 앞선 혜안으로 조국과 민족이 가야만 할 길을 우리말의 고유한 운율에 실어 시를 짓는 천재 민족 시인이었습니다.

 

우리의 숨 막히는 푸른 4월은

자유의 깃발을 올린 날.

 

멍들어버린 주변의 것들이

화산이 되어

온 하늘을 높이높이 흔들은 날.

 

쓰러지는 푸른 시체 위에서

해와 별들이 울었던 날.

 

시인도 미치고,

민중도 미치고,

푸른 전차도 미치고,

학생도 미치고,

참으로 오랜만에,

우리의 얼굴과 눈물을 찾았던 날.

 

(''소묘 33'' 전문)

 

그러나 박봉우 시인이 그리워하는 조국은 쉬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동족 간의 반목의 골은 깊어만 갔고, 자유당의 독재와 부패로 조국은 혼탁했습니다. 결국 419혁명이 일어났습니다. 박봉우 시인은 그 감동을 '우리의 얼굴과 눈물을 찾았던 날' 이라고 노래합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4월 혁명을 등에 업고 출현한 세력의 무능과 부패는 여전히 기승을 부렸고, 온갖 데모가 끊어질 날이 없었습니다. 난장판처럼 갈갈이 찢어지는 조국, 민족 상생은 꿈조차 꿀 수 없는 조국, 먼지처럼 사라진 기대와 실망에 괴로워합니다. 박봉우 시인은 19613월에 조선일보에 발표한 ''진달래도 피면 무엇하리''에서 목독당한 혁명에 슬퍼합니다.

 

어린 4월의 피바람에

모두들 위대한

훈장을 달고

혁명을 모독하는구나.

 

이젠 진달래도 피면 무엇하리.

 

가야 할 곳은

여기도,

저기도, 병실.

 

(''진달래도 피면 무엇하리'' 일부)

 

급기야 조국은 군사정권의 쿠데타에 정령 당하자 박봉우 시인은 충격을 받습니다. 하지만 비록 혁명이 모독당한 조국이지만, '험악한 길과 가시길이라도 / 더욱 굳건한 의지와 신앙으로' '더욱 사랑'하며 '혁명의 아침'을 기다립니다.

 

언젠가는 터져야 할

나의 묵중한 혁명 앞에서

목이 마른 황지의 풀잎

목이 마른 황지의 태양

내가 사는 땅이 있는 한

험악한 길과 가시길이라도

더욱 굳건한 의지와 신앙으로

나는

나의 황지에

조그마한 풀잎의 욕심으로

혁명을 모독하고

더욱 사랑하련다

혁명의 아침을......

 

(''황지의 풀잎'' 일부)

 

군사정권이 길어지면서 조국은 독재의 병폐가 우후죽순처럼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남과 북은 더욱 첨예한 대립을 보입니다. 반공과 멸공의 이데올로기가 더욱 기승을 부립니다. 민족 상생을 이야기하면 빨갱이로 몰리는 숨 막히는 사슬에 꼼짝 못하고 몸을 사리는 시대에 박봉우 시인은 절망에 빠지기 시작합니다. 박봉우 시인은 절규합니다.

 

남과

북으로 나누어 산 지도

오래 되었다

 

녹슨 철로 위에

진달래만

서글프다.

 

어떤 이는 절실히

통일을 부르짖고 갔지만

역사는 잔잔하다.

 

언제 서로 만나고

살 것인가

조국은 아프다.

 

오늘

우리가

만나는 것은,

 

고향과 자유와 평화를

목마르게 부르짖는

절규다 진통이다.

 

(''황지에 꽃핀'' 일부)

 

박봉우 시인은 서울을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마땅히 갈 곳을 정한 것도 아니지만, 더 이상 서울에서 살 수가 없었습니다. 박봉우 시인은 1975년 창작과 비평에 ''서울 하야식''을 발표하고 전주로 낙향합니다.

 

긴 겨울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모두 발버둥치는 벌판에

풀잎은 돋아나고

오직 자유만을 그리워했다

꽃을 꺾으며

꽃송이를 꺾으며 덤벼드는

난군(亂軍) 앞에

이빨을 악물며 견디었다

나는 떠나련다

서울을 떠나련다

 

(''서울 하야식'' 일부)

 

암울한 시대를 온 몸으로 견디며 조국을 사랑하면서 민족시의 터를 일구었던 박봉우 시인은 홀연히 서울을 떠났습니다. 이후 박봉우 시인은 병마와 가난에 시달리며 살다가 1990년 영면했습니다. 다행히 당시 친구인 전주시장이 마련해 준 시립도서관 일을 하면서 겨우 곤궁한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천재 민족 시인의 서장의 기록은 여기까지 입니다.

1976년 창작과 비평에서 이 시집 <황지의 풀잎> 초판을 냈습니다. 내가 박나라 시인에게 받은 이 시집은 20088쇄본입니다. 박봉우 시인의 서장의 삶과 시는 이렇게 한 권의 시집으로 후대에 전해지고 있습니다.

 

나는 이 시집을 정독하고 덮으면서 시인의 책무에 대하여 생각합니다. 앞에서 기술한 박봉우 시인의 시향에 사족을 붙이려는 것이 아닙니다. 시인의 시어 선택과 사회 참여에 관한 소견입니다.

먼저 박봉우 시인의 시어를 살펴보면, 지금보다 한 세대 전에 지은 시임에도 소위 상투적인 미사여구나 기교가 거의 없습니다. 민중 누구나 읽으면 이해할 수 있는 시어를 선택하였지만, 민중의 삶과 유리된 화려하고 달곰한 형용사로 치장한 시어를 꺼내 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박봉우 시인의 시는 읽으면 읽을수록 깊은 맛이 우러납니다. 지금 SNS상에서 나돌고 있는 소위 보기 좋고 듣기 좋아 보이는 온갖 형용사를 나열하여 쓴 식상한 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깊은 맛입니다. 박봉우 시인의 스승인 김현승 시인이 ''그의 시는 광목폭을 찢어 만든 깃발과 같이 울분과 저항과 애수와 동경을 가득히 안고서 보다 고원한 세대의 언덕을 향하여 펄럭이고 있다''고 칭찬한 것도 박봉우 시인의 이러한 맛을 대변한 말이라 하겠습니다.

다음으로 시인의 사회 참여 문제입니다. 시인이라고 해서 당면한 정치와 사회문제에 등 둘리고 산다는 것은 무책임한 죽은 사회의 모습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지금 SNS상에서 시인이란 분들이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보수니 진보니 하는 허상의 진영 논리에 편승하여 문학의 장에서 마구 쏟아내고 있는 것도 제자리를 모르고 날뛰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정치의 장에서 정치적 견해를 주장하는 것은 흠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문학의 장에서 정치사회 문제를 이야기 하는 방식은 정치의 장에서와는 달라야 합니다. 시인은 시로 말하는 사람입니다. 시인이 정치사회 문제를 시로 형상화하면 참여시가 되지만, 시로 말하지 않는 주장은 추한 잡문일 뿐입니다. 시인의 언어는 시이기 때문입니다. 격동의 한국 근현대를 살아온 수많은 시인치고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참여시를 쓰지 않은 시인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한 줄의 이미지를 얻는 것은 위대한 사상 체계를 얻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에즈라 파운드는 말했습니다. 한 편의 시로 그려낸 참여시는 어떤 잡문의 주장보다 소중합니다. 박봉우 시인의 많은 시가 참여시에 해당하지만, 아름다운 민족시의 향기를 잃지 않고 독자의 가슴에 울림을 일으키는 것은 오로지 시로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서평쓰는 시인 차용국     ©강원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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