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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의 탄생(케빈 애슈턴 지음, 이은경 옮김, 2015) / 차용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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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옥
기사입력 2020-10-29

▲ 창조의 탄생(케빈 애슈턴 지음, 이은경 옮김, 2015) / 차용국  © 강원경제신문

 

창조의 탄생(케빈 애슈턴 지음, 이은경 옮김, 2015) / 차용국 

 

''천재들은 위대한 사물과 사상이 온전한 상태로 생겨나는 극적인 통찰력의 순간을 맞는다. 시는 꿈결에 써진다. 교향곡은 머릿속에 완벽하게 작곡된다. 과학은 '유레카'를 외치는 전율과 함께 성취된다. 사업은 마법의 손길로 완성된다. 무엇인가가 없다가도 한순간 생겨난다(7쪽)''는 이 말에 동의하고 공감하는가? 세상의 많은 사람은 창조의 탄생에 관한 이 말을 믿고 있는 듯합니다. 창조는 희귀한 자질과 역량이 출중한 소수 천재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그렇다면, 그 밖의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창조를 할 수 없단 말인가? 창조의 영역에 숙명론적인 어두운 그림자가 펼쳐져 있다는 말과 다를 바 없습니다. 정말 그럴까? 

 

세상에는 새로운 것이 어떻게 탄생하는가를 둘러싼 신화가 존재합니다(8쪽). 신화가 존재한다는 것은 상상력의 발현일 수도 있지만, 그릇된 굳은 생각이 지배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왜 근거 없는 믿음이 존재하는 걸까?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사람의 인지능력의 한계도 한 몫을 합니다. 사람은 스스로 증명하고 설명할 수 없는 일이나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초자연적인 존재를 믿고 의지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인류의 지난한 진화의 산물입니다. 진화는 이미 정해진 목적이 있거나 철학적 당위성이 있는 게 아닙니다. 생존과 유전을 위한 선택이 있을 뿐입니다. 각 세대의 선택이 이후 세대의 생존과 유전을 보장하기도 하고, 종말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 시대의 과학이 엄청난 발전을 하였다고는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모르는 게 더 많습니다. 우리 조상도 마찬가지였고, 오히려 더했을 것입니다. 이미 있는 존재, 그것은 초자연적인 존재('신'이라 한다)가 창조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선사인과 고대인의 오랜 믿음은 중세시대로 이어졌습니다. 창조는 신과 신이 선택한 소수의 사람만이 신의 영감을 받아 할 수 있는 특별한 일이라고 믿었습니다. 중세가 붕괴되고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서면서 이성이 중요한 사유체계에 들어왔지만 신의 중재라는 믿음의 잔재는 여전히 사람의 의식을 지배했습니다. 그 믿음이 하도 강력하여 인공지능의 설계가 화두가 되고 있는 지금의 시대에도, 우리의 뇌는 여전히 그것을 삭제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창조의 세계가 소수 천재들이 환상적인 영감을 받아 이루어 낸다는 생각은 말 그대로 신화일 뿐입니다. 창조는 결코 소수 천재들의 전유물인 신화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 책은 그것을 밝히는 책입니다.

  

저자 캐빈 애슈턴은 '사물 인터넷' 개념을 창시한 이 분야 권위자입니다. 그가 만든 '사물 인터넷' 개념은 2013년 옥스포드 사전에 '일상 속 사물들이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네트워크 연결성을 갖춘 인터넷 개발 기술' 이라고 등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마법은 없었고 영감이 번쩍이는 순간도 거의 없었으며 오로지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일을 해야 했을 뿐이었다. 사물 인터넷을 구축하는 과정은 정치로 얼룩지고 실수가 넘쳐났으며 주요 계획 혹은 전략과 무관했기 때문에 더디고 힘들었다. 나는 실패를 학습하며 성공을 배웠다. 나는 갈등을 예측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역경에 놀라기보다는 역경에 대비하는 법을 배웠다(12쪽).'' 캐빈 애슈턴은 사물 인터넷을 구축하는데 창조의 마법 같은 순간은 없었다고 단언하면서, 오로지 오랜 시간의 노동의 결과였다고 합니다. 무언가를 창조한다는 것은 지난한 노력의 행위라는 것이고, 누구라도 노력하면 창조할 수 있다는 함의입니다. 

 

우리는 창조의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창조는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거창한 것만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가 먹고. 말하고. 생각하고, 만들고, 생활하는 모든 것은 누군가에 의해서 창조된 결과물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수많은 창조인의 대부분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오늘날 사용하는 모든 것은 인류의 시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기원을 지니고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기까지는 창조하는 사람이 그리 중시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28쪽). 수많은 창조물에 특허권이나 저작권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일시적인 수익이나 편의를 누렸을 수는 있었으나 지속적인 독점적 이익을 보상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창조물은 연쇄 반응을 일으키는 파도의 물결처럼 퍼져갔을 것입니다. 우리 주변의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창조물은 소수 천재가 영감으로 만들어 하사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서 창조한 새로운 것에 대한 공유였습니다. 결국 창조 행위와 결과는 인류 공생에 기여하면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행동 신경학자 리처드 카셀리(Richard Caselli)는 ''개인 간에 상당한 질적 및 양적 차이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창조 행동의 신경생물학적 원리는 가장 덜 창조적인 사람부터 가장 창조적인 사람에 이르기까지 동일하다.''(37쪽)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창조성의 신화가 터무니 없는 허구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창조는 진화의 산물입니다. 현생 인류가 여러 인류와의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원인에 관해서는 다양한 주장이 있겠지만, 창조성도 큰 몫을 하였을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무엇인가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개선하고 활용하려는 동기와 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현생 인류가 창조를 통한 혁신의 길을 개척하는 진화의 여정이었습니다. 

 

결국 창조는 소수 천재의 전유물이 아니라 노력하는 사람의 노동이 맺은 열매입니다. 창조의 결과는 특별할 수 있지만 창조자는 그저 사람일 뿐입니다. 창조는 이런 사람들의 수많은 연쇄의 고리로 연결되고 융합된 노동의 결과물입니다. 창조는 우리 인류의 본성이기에,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유전하는 모든 노력의 가치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과거와 현재의 시공간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연결망을 유지하면서 노력한다면, 우리 자신 각자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던 창조는 일어날 것입니다. 진화라는 발자취를 살펴 볼 때, 지금 우리가 이 자리에서 살아가는 모든 것이 창조와 연결되어 있고, 우리 자신 자체가 창조물이자 창조자이기 때문입니다. 

 

자, 이제 처음의 물음으로 돌아가 역설적인 답변을 해봅시다. ''천재들이 위대한 사물과 사상이 온전한 상태로 생겨나는 극적인 통찰력의 순간만 찾는다면, 시인이 꿈결처럼 써질 영감만 기다린다면, 작곡가가 교향곡이 머릿속에 완벽하게 작곡될 때만 곡을 쓴다면, 과학자가 '유레카'를 외칠 수 있는 전율의 순간만 생각한다면, 사업가가 마법의 손길만 소망한다면, 우리가 무엇인가가 없다가도 한순간 생겨나는 것이 창조라는 신화만 믿고 있다면'' 창조는 영원히 오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 안에 있는 태생적인 창조마저 잃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노동과 노력이 빠진 공허한 말뿐이기에.

▲ 서평쓰는 시인 차용국     ©강원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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