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역사란 무엇인가(E. H. 카 지음, 김승일 옮김, 2014) / 차용국

- 작게+ 크게

차용국
기사입력 2020-09-19

▲ 역사란 무엇인가(E. H. 카 지음, 김승일 옮김, 2014) / 차용국  © 강원경제신문


역사란 무엇인가
(E. H. 카 지음, 김승일 옮김, 2014) / 서평쓰는 시인 차용국

  

E. H. 카는 역사만 공부한 것도, 평생을 역사만 연구한 학자도 아닙니다. 카는 1892년 런던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하고, 1916년에 영국 외교부에 들어가 20여 년 동안 외교관으로 공직을 수행했습니다. 1936년 공직에서 물러나 웨일스 대학에서 국제정치학을 강의했고, 1953년부터 옥스퍼드 대학에서 정치학을 가르치다가, 63세가 되는 1955년부터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역사학을 가르쳤습니다. 늦깎이 역사학자인 셈입니다.

 

하지만 정치학과 역사학에서 이루어낸 업적과 현실 정치에 기여한 공로는 결코 적지 않습니다. 그는 국제정치학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읽어보았을 <20년의 위기> , 시대가 더해도 여전히 가치를 잃지 않는 여러 권의 책을 저술했고, 1919년 파리강화회의 영국 대표단을 수행한 실무자였고, 1948년에는 유엔 <세계인권선언> 기초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카는 역사를 살아 움직이는 역동적인 생물과 같은 존재로 보았습니다. 과거의 사실은 그것만으로 진정한 역사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것입니다. 어떤 대화일까? 무척 궁금합니다. 어서 대화의 장으로 뛰어 들어갑시다.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하여, 우리들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신이 처해 있는 시대적 위치를 반영하는 대답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어떤 관점에서 보고 있는가'라는 측면에서 대답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14). 이러한 입장에서 보면, 역사는 과거의 사실에 관한 기록이라기보다 현재의 상황에서 과거의 사실을 어떻게 보느냐에 관한 견해가 됩니다. 결국, 역사는 고정된 과거의 사실이 아니라, 현재의 상황에서 끊임없이 재해석하고 다시 써야하는 한다는 함의이기도 합니다. 이쯤에서 의문이 생깁니다. 그러면 과거의 사실이 변할 수 있는가? 도대체 역사적 사실이라 무엇인가?

 

카는 역사가의 해석으로부터 독립하여 객관적으로 존립하는 역사적 사실의 단단한 핵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은 본말이 뒤집힌 오류(21)라고 합니다. 역사적 사실로서 인정될 것인지, 아니면 인정되지 않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주요인은, 역사가들이 타당하고 의미 있는 것으로 인정하느냐 않느냐에 달린 것(22)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알고 있는 역사는 비록 사실에 토대를 둔 것이라고는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결코 사실이 아니고 널리 인정되게 된 일련의 판단에 불과하다(25)는 배러글러프 교수의 견해와 같은 맥락입니다. 사실이라는 것은 문서에 기재되어 있건 없건 간에 역사가의 손으로 처리되었을 때 비로소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29). 유물과 문서와 같은 사료는 중요하지만, 그것에 너무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역사가의 마음속에서 과거를 재구성하는 것은 경험적인 증거에 의지하면서 행해집니다. 그러나 이 재구성 자체는 경험적 과정이 아니며, 사실의 단순한 열거로써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재구성의 과정이 사실의 선택과 해석을 지배하는 것입니다(39). 다시 말하면, 역사가의 관점에 따라 선택되고 해석되어 재구성된 사실만이 역사적 사실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역사상의 사실은 순수한 형식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또한 존재할 수도 없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순수하게 우리 앞에 나타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언제나 기록자의 마음을 통해서 굴절되어져 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이 역사책을 읽을 경우 우리들의 최초 관심사는 이 책 속에 포함되어 있는 사실이 아니라, 이 책을 쓴 역사가가 어떤 사람인가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40). 그래서 우리가 역사책을 읽을 때 그 책을 쓴 역사가가 어떤 배경에서 사실을 선택하고 해석하여 재구성 하였는지를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역사가는 자신이 연구하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그 사람이 행한 행위의 배후에 있는 사상을 상상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43). 역사가가 자신이 쓰고 있는 인물의 마음과 어떤 형태로든 접촉이 불가능하게 되면 역사는 쓸 수 없을 것입니다(44). 기록이나 유물과 같은 증거만으로 과거 인물의 마음을 온전하게 읽기에는 매우 제한적이며, 불완전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 공백을 상상적 이해로 채워야 역사적 사실이 되는 것입니다.

 

역사는 현재의 시각으로 보는 것입니다. 현재의 시각을 통해서 보지 않으면 우리가 과거를 보는 것은 불가능하고, 과거를 이해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역사가는 자기 시대에 속한 사람으로, 인간이 존재하는 데 필요한 여러 조건에 의하여 자기시대에 속박당하게 마련입니다(44). 역사가는 과거의 언어가 아니라 자기시대의 언어로 과거의 사실을 해석하고 쓰는 사람입니다. 그 역사책을 읽고 공부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역사가의 기능이란 과거를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을 과거로부터 해방시키려는 것도 아니며, 현재를 이해하는 열쇠로서 과거를 정복하고 이해하는 것입니다(46). 결국 역사는 현재의 상황이나 이념이 반영된 것이기 때문에 끊임 없이 변한다는 함의입니다. 그렇다면 역사를 해석하는 기준이 현재의 어떤 목적에 부합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지 않는가? 애초부터 역사는 객관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이라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을 것입니다. 역사상의 객관적인 사실 없이 해석이 전부인 역사가 과연 타당성이 있을까?

 

지식이란 어떤 목적을 위해서 지식이 되는 것입니다. 지식의 타당성은 목적의 타당성에 의존하는 것입니다(49). 인간은 모두가 환경 속에 말려들어 가지 않고, 또 무조건 환경에 따르지도 않습니다. 반면에 인간은 환경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절대적인 지배자도 아닙니다. 인간과 환경의 관계는 역사가와 주제의 관계와 같은 것입니다(52). 과거의 사실이 있는 그대로 타당한 지식이라는 믿음은 그야말로 허상의 신화입니다. 사료 자체는 진실일 수도 있고, 거짓일 수도 있으며, 진술 혹은 거짓을 숨겨놓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사료가 어떠한 상황과 환경에서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졌는지 해석을 거쳐야만 의미 있는 사료가 되는 것입니다.

 

역사가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해석에 따라서 자신의 사실을 만들고, 자신의 사실에 따라서 자신의 해석을 만들어 내는 과정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52). 역사가는 현재의 일부이고, 사실은 과거에도 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들 상호작용은 또 현재와 과거와의 상호관계를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호작용의 과정으로, ''현재와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53)''라는 것입니다. 역사를 객관적인 사실의 기록이라는 주장은 역사의 무게 중심을 과거에 두는 역사관일 뿐이며, 역사를 주관적 해석의 결과라는 주장은 역사의 무게 중심을 현재에 두는 역사관이라 하겠습니다.

 

카는 역사를 단순한 과거 사실의 재현이 아니라 현재의 역사가가 해석하고 재구성했을 때만 진정한 의미의 역사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똑같은 사실이라도 역사가의 해석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갖는 역사가 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결국 인간 사회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인간의 사고와 의식이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일 수밖에 없다는 관점입니다. 그래서 역사는 현재의 우리가 재해석한 주관적 사실이라는 점. 또한 역사는 이미 있었던 미래라는 점. 그래서 국제정치사적 관점에서 보면, 역사란 미래에서 벌어질 기억의 전쟁이라는 점에서 영원히 의미심장한 숙제라 하겠습니다.

▲ 서평쓰는 시인 차용국     ©강원경제신문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band naver URL복사
꽃
댓글

i

댓글 수정 및 삭제는 PC버전에서만 가능합니다.
URL 복사
x

PC버전

Copyright ⓒ 강원경제신문(주).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