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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탄생(로버트ㆍ미셸 루트번스타인 지음, 박종성 옮김, 2008) / 차용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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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용국
기사입력 2020-08-29

▲ 생각의 탄생(로버트ㆍ미셸 루트번스타인 지음, 박종성 옮김, 2008)  © 강원경제신문

 

생각의 탄생(로버트미셸 루트번스타인 지음, 박종성 옮김, 2008) / 차용국

  

로버트는 생리학자입니다. 미셸은 역사학자입니다. 각기 다른 분야의 전문가인 이들은 부부이자 연구동반자입니다. 얼핏보면 어울리지 않는 궁합인 듯한 로버트미셸 루트번스타인 부부가 의기투합하여, 인류 역사에서 가장 창조적인 사람들이 사용한 생각의 도구를 연구했습니다. 이 책 <생각의 탄생>은 그 기념비입니다.

 

이 부부는 한 분야의 창조적 사고를 배운다는 것은 다른 분야에서 창조적 사고를 할 수 있는 문을 여는 것과 같다(5)고 합니다. 우리는 '창조적 사고는 상상력에서 나온다. 상상할 수 없다면 창조할 수 없다(45)'는 말을 인이 박히도록 들어왔습니다. 그러면 상상력만 있으면 창조가 이루어지는가? 현실은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이어령 교수는 상상력이란 이미 있는 것들을 통합해 새것으로 만들어내는 능력을 말한다(9)고 하면서, 창조적 발상의 근원은 무엇을 끄집어낼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끄집어낼 것인가에 달려 있다(7)고 합니다. 금속학자이면서 인문학자이며, 화가이기도 했던 시릴 스탠리 스미스도, 생각의 도구들이 그 본질상 실제적인 것과 상상의 것, 창조된 것들 사이에 영속적인 연결망을 만들어준다(53)고 했습니다.

 

결국 상상력이 창조로 이어질 수 있는 연결고리를 찾아 습득해야 한다는 것이 요체라 하겠습니다. 생각하는 사람도 장비 다루는 법을 연습하지 않는다면 창조적으로 될 수 없다(53)는 뜻입니다. 루트번스타인 부부는 역사 속에서 가장 창조적인 사람들은 실제와 환상을 결합하기 위해 13가지 생각의 도구를 이용했다고 합니다. 이 도구들은 관찰, 형상화, 추상화, 패턴인식, 패턴형성, 유추, 몸으로 생각하기, 감정이입, 차원적 사고, 모형 만들기, 놀이, 변형, 그리고 통합입니다(48).

 

먼저 관찰부터 살펴봅니다. 관찰은 생각의 한 형태이고 생각은 관찰의 한 형태입니다. 결국 관찰행위의 목적은 감각적 경험과 지적 의식을 가능한 한 가깝게 연결(74)'하는 데 있습니다. 관찰은 그냥 보인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관찰하기 위해서는 눈, , , 손을 훈련시키듯 마음을 훈련해야 합니다(74). 다양한 훈련 방법과 기술이 있을 것입니다. 미술도 그 하나입니다. 어떤 것을 묘사하는 일은 주의력을 훈련시키고 강화시키며 현상 전체를 보게 만들기 때문입니다(76). 화가인 파울 클레(Paul Klee)는 미술은 보이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을 보이게 하는 것(77)이라고 합니다. 많은 과학자들도 미술이 관찰력을 기르는 유용한 방법이라는 데 의문을 달지 않습니다.

 

우리는 관찰할 수 있는 것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상상을 통해 형상화가 이루어집니다(92). 형상화라는 것은 현상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에서부터 특이한 추상능력, 감각적인 연상에 이르기까지 망라한다(83)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형상화는 많은 분야에서 보편적으로 쓰이는 생각의 도구(88)가 될 수 있습니다. 시인 존 드라이든(John Dryden)은 이미지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시의 생명이자 정점(89)이라고 합니다.

 

혹자는 추상화를 복잡하고 난해한 것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오해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추상화란 현실에서 출발하되, 불필요한 부분을 도려내가면서 사물의 놀라운 본질을 드러나게 하는 과정(112)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추상화는 대상의 전체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한두 개의 본질적인 특성만을 골라내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오히려 단순화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뛰어난 추상작업은 그때까지 드러나지 않던 특성과 관계를 단순화를 통해 드러내는 일이었으며, 그 결과 새롭고 다의적인 통찰과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117)는 뜻입니다. 마치 글쓰기의 본질이 종이 위에 단어를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들을 골라내고 버리는 데 있는 것과 같다(121)할 것입니다.

 

패턴을 알아낸다는 것은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미리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138). 그런데 세계 각지의 사람들은 자신이 성장한 지역 특유의 예술과 과학체계가 선호하는 패턴만을 인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154). 경험하지 못한 패턴에 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고. 내가 아는 패턴만을 고집하며, 심지어 강요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패턴인식은 창조에 방해가 될 뿐만 아니라 위험하기조차 합니다.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안다는 것, 곧 무지의 패턴을 안다는 것은 무엇을 아는지 아는 것만큼 귀중하다(152)는 함의입니다. 시 읽기 또는 시 창작은 패턴을 발견하고, 패턴과 패턴을 연결하여 새로운 패턴을 창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시 발견'에 있어서 주목할 만한 것은 같은 단어라도 다르게 배열될 경우 아주 상이한 패턴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143). 시는 감정의 배설물이 아니라 창조의 영역에서 정서와 합일할 때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패턴들 사이의 패턴들(메타패턴)을 발견하는 능력은, 사물 등에서 나타나는 반복적인 순서나 양식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며, 그 답을 찾아내기 위해 보고, 듣고, 느끼는 일에 달려 있다(159)고 합니다. 하나의 요소나 작용을 다른 것과 병치하는 것은 둘을 단순히 합치는 것과는 전적으로 다른 종합적 패턴을 만들어냅니다(165). 패턴과 패턴이 결합되면 가치 있는 새로운 패턴이 만들어지는데, 중요한 것은 결합되는 요소들의 복잡성이 아니라 그 결합방식의 교묘함과 의외성(179)이라 하겠습니다. 우리가 더 많은 패턴을 발명해낼수록 우리는 더 많은 실제지식을 소유하게 될 것이고 우리의 이해는 더 풍요로워질 것입니다(180). 이것이 우리가 패턴을 찾아내고, 공부해서 체화하는 진정한 가치일 듯합니다.

 

일반적으로 유사란 닮지 않은 사물 사이의 '기능적인 닮음(191)'을 말합니다. 유추란 둘, 혹은 그 이상의 현상들 사이에 기능적으로 유사하거나 일치하는 내적 관련성을 알아내는 것입니다(197). 어떤 사물을 볼 때 '그것이 무엇인가'가 아닌 '그것이 무엇이 될까'에 착안해야만 우리는 사물을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활용(210)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유추의 학습에 매우 유용한 분야가 시입니다. 시인은 객관적 세계가 아닌 주관적 세계에 대한 인간의 이해가 넓어지기를 원합니다. 그러면서 지적정서적 연상을 동원해서 '알려진 것''알려지지 않은 것' 사이의 유사성을 찾으려고 한다(202)는 점에 방점을 두기 때문입니다.

 

로댕은 '내 작품 <생각하는 사람>'생각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의 머리, 찌푸린 이마, 벌어진 콧구멍, 앙다문 입술만이 아니다. 그의 팔과 등과 다리의 모든 근육, 움켜쥔 주먹, 오므린 발가락도 그가 생각 중임을 나타낸다(223)'고 말했습니다. 온 몸이 생각하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생각은 머리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훈수이기도 합니다. 몸으로 생각하는 것은 근육의 움직임, 자세, 균형, 접촉을 느끼는 우리의 감각에 의지합니다. 우리는 대부분 자각하지 않은 상태에서 몸의 느낌을 알게 됩니다(217). 체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좋거나 싫을 때 느끼는 감정, 행복감이나 비애감을 느낄 때, 마음은 실제로 내장에 연결되고, 내장은 다시 마음이나 근육과 통하게 됩니다. 마음과 몸은 하나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상호연계성을 어떻게 이용하고 촉진시겨야 할지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229). 머리로 익힌 것은 잊혀지고 버려져도, 몸으로 익힌 것은 결코 배신하는 법이 없는 창조의 터전이기 때문입니다.

 

감정이입은 다른 사람의 몸과 마음을 통해 세계를 지각하는 것입니다. 철학자 칼 포퍼는 새로운 이해를 얻을 수 있는 가장 유용한 방법을 '공감적인 직관', 혹은 '감정이입'이라고 보았는데, 이것은 '문제 속으로 들어가 그 문제의 일부가 되는 것'을 가리킨다(241)고 하겠습니다. 소설가 알퐁소 도데(Alphonse Daudet)'작가는 묘사하고 있는 인물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의 몸속으로 들어가서 그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그의 감각으로 세상을 느껴야 한다(242)'고 말했습니다. 물리학자 에른스트 마흐(Ernst Mach)'과학적 사냥꾼(과학자)은 방금 목격한 사냥감의 삶의 방식을 상상해내고 그에 따라 자신이 취할 행동을 선택한다(255)'고 합니다. 화가 조안 미첼은 '그림은 나의 일부분이 아니다. 그림을 그릴 때 나는 내 자신을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아무 힘이 없다. 그림이 나에게 해야 할 일을 지시하는 것이다(261)'라고 말했습니다. 역사가들은 타인의 눈으로 보기 위해 '시대의 현장'으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역사가들에게 '감정이입'이란 타인의 눈으로 세계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249). 제 아무리 기술이 뛰어난 사냥꾼이라 할지라도 사냥에 성공하려면 사냥감처럼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253)고 합니다. 대나무를 그리려면 먼저 내 안에서 그것이 자라나게 하라(258)는 말이 있습니다. 많은 창조적인 사람들은 뭔가를 생각할 때 자기 자신을 잊는다고 합니다. ''를 잊고 '그것'과 하나가 된다(49)고 합니다. 그 대상 속으로 들어가 그것과 하나가 된다는 것은 그것을 완벽하게 이해한다는 함의 입니다. 이렇게 감정이입의 본질은 다른 사람이나 사물이 되는 것입니다.

 

차원적 사고는 2차원에서 3차원으로, 혹은 그 역 방향으로 이동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어떤 한 차원에서 주어진 정보들을 변형시켜 다른 차원으로 옮겨놓거나, 아니면 차원 내에서 어떤 물체나 과정이 차지하는 크기를 일정한 비율로 줄이거나 변경하는 등, 우리가 알고 있는 것에 따라 공간과 시간 너머의 차원들을 개념화 하는 것을 뜻한다(270)고 하겠습니다. 마찬가지로 시간도 단 한 가지 차원일 수는 없습니다. 시간 역시 우리가 취하는 크기와 시각에 따라 다릅니다. 아인슈타인은 시간의 통로, 혹은 제4차원이라고 불리는 것을 보여주었는데, 이것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관찰자와 관찰대상의 움직임에 따라 상대적인 것입니다. 빛에 가까운 속도로 다른 별로 여행을 한 사람이 몇 년 지나서 집에 돌아왔다고 할 때, 그의 아이들은 모두 이미 오래전에 사망했을 것입니다(282). 공간과 시간을 입체적이며 다차원적으로 보고 생각할 때, 새롭고 광활한 창조의 신세계가 펼쳐질 것입니다.

 

모형은 실제, 혹은 가정적 실제상황을 염두에 두고 필요한 규칙과 자료, 절차를 이용하는 시뮬레이션입니다(295). 창조적인 생각이 실제 유의미한 성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실험을 통하여 증명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형은 창조적 생각의 실험 도구라 하겠습니다. 모형은 본질을 구현한다(300)고 합니다. 모형을 만드는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그것을 만드는 사람이 어떤 상황이나 대상, 혹은 생각을 완전히 제어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고, 이를 통해 이해가 부족한 지점이 어디인지를 깨닫게 해준다(302)는 것입니다. 모형은 미처 보지 못한 창조적 생각을 보강하고 가다듬는 기능 뿐만 아니라, 모형의 한계와 통제 범위를 보여줍니다. 따라서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이해하려면 유용하면서도 다양한 모형을 만들어봐야 할 것입니다. 이 행위를 통해서 이해력과 제어력을 기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317). 모형을 만들고 실험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소재가 아니라 그것이 구현하고자 하는 본질적 기능일 것입니다.

 

놀이에는 분명한 목적이나 동기가 없습니다. 놀이는 성패를 따지지 않으며, 결과를 설명해야 할 필요도 없고, 의무적으로 수행해야 할 과제도 아닙니다. 놀이는 내면적이고 본능적인 느낌과 정서, 직관, 쾌락을 선사하는데, 바로 그것들로부터 창조적인 통찰이 나온다(323)고 합니다. 놀이는 분야 간의 경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놀이 안에서는 그 어떤 것이든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될 수 있습니다(335). 놀이는 우리 자신만의 세계와 인격, 게임과 규칙, 장난감, 퍼즐을 만들어내게 함으로써 지식을 변형시키고 새로운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그리고 이것들을 통해 새로운 과학과 예술이 가능해집니다(348). 놀이의 본질적인 힘이란 상투적인 관행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대안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에서 놀이가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놀이가 없는 사회는 상상력과 창의력이 없는 사회입니다. 이런 사회는 미래가 없습니다. 잃어버린 놀이를 찾아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미래의 문을 열어주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생각도구를 연속적, 혹은 동시에 사용하여 생각도구끼리 영향을 주고받거나 작용하게 하는 것을 가리켜 변형, 혹은 변형적 사고라고 부릅니다. 변형적 사고는 상이한 분야를 연결해주는 메타패턴을 드러내주어 특정 영역에 치우친 사고보다 더 가치 있는 통찰을 낳는다(353)고 합니다. 한 형태를 다른 형태로 변형하는 일은 어떤 분야에서의 발견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음악과 미술 간의 상호변환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화가인 파울 클레는 음악을 이미지로 변형시켰다(375)고 합니다. 세상은 다양한 재주와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갑니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생각과 깨달음, 그리고 지식과 아이디어를 소통할 때에는,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변형할 필요가 있습니다. 변형적 사고는 앎의 많은 방법들을 가능한 한 많은 의사전달의 형태들에 연결해주는 유용한 생각의 도구입니다.

 

변형적 사고는 필연적으로 종합적 이해라는 결과를 선물합니다. 이는 감각적 인상과 느낌, 지식과 기억이 다양하면서도 통합적인 방법으로 결합되는 것을 말합니다(390). 응용수학자 제임스 라이트힐은 60여 가지의 분야를 섭렵했다고 합니다. 물리학과 공학, 역사학, 심리학과 수많은 언어들이 그의 학문적 영역에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390). 블라드미르 나보코브는 소리를 듣는 동시에 본 적이 많았다고 회고했습니다(392). 핵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은 방정식을 볼 때면 그 글자들이 색깔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393). 극작가 해럴드 핀터는 나는 글을 쓰연서 계속 음악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395). 철학자 스티브 오딘은 감각들 간의 경계가 무너지고 색, 소리, , , 감촉, 온도감각 등 모든 감각들이 섞이면서 느낌의 연속체로 용합된다(398)고 합니다. 이들은 자기 분야의 최고의 전문가이면서도 다양한 분야를 끝없이 섭렵했습니다. 우리에게도 통합적인 마인드가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오늘날 세계가 안고 있는 문제 중에서 단일한 학문분야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것이 분석적이건, 정서적이건, 아니면 전통적이건, 한 가지 접근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뜻입니다. 미래는 우리가 얼마만큼 생각의 도구를 통합해서 통합적 이해의 성과물을 창출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초연결초융합지능화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우리 앞에 다가와 있습니다. 이 시대를 이끌어갈 주인공은 통합적 생각으로 충만한 르네상스형 인간입니다.

▲ 서평쓰는 시인 차용국     ©강원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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