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林森의 招待詩 - 모래톱

林森의 招待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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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삼
기사입력 2020-08-22

 

  © 림삼

 

** 林森招待詩 **

 

모래톱

 

모래톱에 파도 물결

남실 왔다가

바다의 이름 두고

되돌아 가면

 

선명한 흔적 마다

퍼지는 햇살

고향 꿈이 산산이

흩어져 가네

 

소라껍질 귀에 대면

고향의 노래

동구밖 뛰며 돌며

부르던 노래

 

그리워 눈을 들어

먼 하늘 보면

바람에 실려오는

고향의 내음

 

- ()의 창() -

 

사람들의 영원한 그리움은 밖으로 향하는 그리움이 아니고, 회귀의 본능에서 유발되는 되돌이표 그리움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향이나 향수’, 그리고 동심등의 단어는 우리에게 편안함과 안락함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대표적인 그리움의 단어이다.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고향을 떠올리면 선한 마음과 아련한 동경의 심정에 젖어들곤 한다.

아마도 그건 사람이라면 의례껏 갖는 가장 근원적인 로망일 것이다.

그래서 이라는 표현도 따지고 보면 다분히 미래지향적이며,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지의 세계를 향한 그리움의 표상일 수 있겠지만, 과거의 추억과 예전의 그리움으로 돌아가고 싶은 아련한 마음의 발로이기도 하다.

세상 만사는 마음 먹기 달렸고 세상의 모든 진리는 양면성이 있어서, 서로 상극의 본질들이 수평과 균형을 이루면서 삼라만상과 우주 만물을 형성하고 있다.

음과 양이 있고, 밤과 낮이 있으며, 하늘과 땅이 있고, 산과 바다가 있다.

안과 밖이 있고, 고향과 타향이 존재하며, 늙은이와 어린아이가 함께 살아간다.

그런가 하면 삶과 죽음, 건강과 질병, 전쟁과 평화, 강함과 약함의 개념과 더불어 높고 낮음과 넓고 좁음, 길고 짧음과 크고 작음 등도 함께 어우러져 조화 속의 질서를 구축하고 있으니 바로 이것이 세상의 모습이다.

 

같은 상황에서 같은 일을 해도 행복과 불행이 나뉘고 성공과 실패가 교차한다.

그러다보니 웃음과 울음은 바로 종이 한 장 차이이다.

결과는 원인이 있기 마련이고, 나와 남은 상생을 할 수도, 상극이 될 수도 있다.

이 점을 깨닫기만 해도 철학이 되고, 시가 되고, 낭만이 가득한 삶을 살 수가 있는 것이다.

하루 하루 반복되는 일과 속에서 거창한 어떤 계기나 전환점을 발견하기 위하여 속절없이 애를 쓸 필요는 없다.

삶 자체가 자연스러운 시간의 연속성에 실려 있는 여정과 같은 것이다.

요는 앞만 보지 말고 옆을 볼 일이라는 거다.

버스를 타더라도 맨 앞자리에 앉아서 앞만 보면서 추월과 속도의 불안에 떨지 말고, 적당한 뒷자리에 앉아서 창 밖 풍경을 바라보는 습관을 기르자.

기차여행이 아름다운 것은 정면으로 앞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스쳐지나가는 창 밖의 풍경은 어디나 고향과 같고, 게다가 어둠이 내리면 지워지는 풍경 위로 선명하게 떠오르는 얼굴들은 그리운 사람들의 모습이 아닌가?

조급한 심사를 갖고 연명하는 목숨들에게 언제나 가파른 죽음은 바로 앞에 있는 것이고, 평화로운 삶은 바로 그 옆에 있는 것이다.

 

사는 게 힘들고 고통스러울지라도 우리를 지나쳐가는 사람들을 탓하거나 그들에게 돌을 던질 필요는 없다.

앞만 주시하는 삶이라면 은연중에 누군가 등 뒤에서 뒤통수를 후려칠지도 모르니 앞서는 사람에게 미혹되지도 말고, 뒤에 오는 사람을 무시하지도 말아야 한다.

다른 선택이 없이 일로매진만 추구하는 길에는 피로만 쌓이고, 결국 자주 코피가 쏟아져 궁극적으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건강을 해치게 되지만, 휘휘 둘러보며 가는 길엔 여유가 피어나 들꽃들이 길을 향기롭게 하는 아름다운 정경도 볼 수가 있다.

평화의 걸음걸이는 느리더라도 함께 가는 것이지만, 오로지 앞만 보다가는 서로 오해가 쌓여 화를 내고, 싸움을 하고, 마침내 전쟁이 터지게 된다.

더불어 손잡고 발밑의 개미 한 마리, 풀꽃 한 송이를 살펴보며 가는 길이 바로 생명의 길이며, 평화의 길이 될 것이다.

한 사람의 천 걸음보다 더불어 손을 잡고 가는 모두의 한 걸음이 더 소중하니, 예컨대 앞만 보지 말고 바로 그 옆을 보는 삶의 지혜가 필요할 때다.

 

누구에게나 인생에는 어려운 일, 슬픈 일들이 있다.

그래도 때때로 꿈이 이루어지고 행복이 찾아온다.

그 행복이 오래 지속되는 것은 아니라도 괜찮을 것이다.

그 행복은 잠시 동안은 참으로 멋지고 아름답게 여겨진다.

그냥 그런 기분들을 모아서 소박한 행복의 날들을 만들면 된다.

한 곳에 머물며 고향을 갖는다는 기분, 꽃들과 나무, , 샘물과 친해진다는 기분, 한 조각의 땅에 사랑을 느낀다는 기분, 몇 그루의 나무와 몇 포기의 화초, 그런 고향의 모습을 그리는 기분이 행복의 기분인 것이다.

행복은 아침 저녁으로 울타리를 넘어 정원으로 찾아드는 새들처럼 온다.

언제 이리 시간이 갔나 싶은 생각이 드는 요즈음이다.

한 해의 절반 이상을 어찌 살아왔나 되돌아 보면 후회가 되는 일도 또 아쉬운 일들도 많다.

그러나 후회는 마음 속에 접고 아쉬움은 아직 남은 다른 하나의 절반, 이 해의 마지막까지 채워나갈 생각으로 위안을 삼아본다.

그렇다면 이 계절 한 여름에 은근한 욕심 몇 가지는 품어도 죄가 되지는 않을 듯 싶다.

 

지금쯤이라면 불현듯 어디선가 전화가 걸려오면 좋겠다.

늘 그리워하는 그 사람이, 사랑한다는 말은 하지 않더라도 잊지 않고 있다는 말이라도 한 번 들려주면 참 좋겠다.

지금쯤이라면 불쑥 편지를 한 통 받았으면 좋겠다.

편지 같은 건 상상도 못하는 친구로부터,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라도 담긴 편지를 받는다면 참 좋겠다.

지금쯤이라면 누군가가 나에게 보내는 선물을 고르고 있으면 좋겠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예쁘게 포장하고는, 내 주소를 적은 뒤 망설임도 없이 득달같이 우체국으로 달려가면 참 좋겠다.

지금쯤이라면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면 좋겠다.

귀에 익은 편안한 음악이 흘러나와 나를 달콤한 추억의 한 순간으로 데려가면 참 좋겠다.

지금쯤이라면 누군가가 내 생각만 하고 있으면 좋겠다.

나의 좋은 점, 나의 멋있는 모습만 마음에 그리면서 내 이름을 부르고 있으면 참 좋겠다.

지금쯤이라면 상큼한 여름의 바람이 내 고향 들녘을 지나가면 좋겠다.

비온 뒤, 이렇게 맑은 여름 햇살이 내 고향 들판에 쏟아질 때 모든 곡식들이 천천히 살쪄가면 참 좋겠다.

 

그런데 '지금쯤....' 하고 기다리지만 아무 것도 찾아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제는 내가 나서야겠다.

내가 먼저 전화하고, 편지를 보내고, 선물을 준비하고 음악을 띄워야겠다.

그러면 누군가가 좋아하겠지.

그러면 나도 좋아지겠지.

이 찬란한 계절이 가기 전에, 비록 오늘의 삶이 힘겨울지라도 하늘을 바라볼 때면 늘 힘이 되어주는 고향과 사랑의 기억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풀벌레 울음 여울지는 하늘 가에 파아란 마음으로 메아리치는 늘 푸른 여름의 사랑이었으면 좋겠다.

가끔 비 갠 하늘이 너무 파래 눈물이 날 때면, 사랑이 가득한 메세지로 늘 힘이 되어주는 지란지교 참사랑처럼, 언제나 반겨주는 한 송이 푸르른 들꽃 잎새처럼, 행복이 가득한 사랑이 고향의 그 어린 시절 기억 속에 담뿍 담겨있으면 좋겠다.

이 여름이라면 계절 속에서 닮아온 화사함과 신선한 오솔길을 전하며 누구에게나 푸근한 고향의 느낌을 선물하는 여름 단상의 작품 여나믄이라도 써진다면 참말 좋겠다.

    

  © 림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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