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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직지소설문학상대상수상작 [불멸의 꽃] 소설 연재 -61-

고려역사장편소설 [불멸의 꽃] 제61회 챕터19 <다시 살아난 용광로> 제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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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희(시인 .소설가)
기사입력 2020-02-29

 

제2회 직지소설문학상대상수상작 [불멸의 꽃] 소설 연재 -61-

 

▲ 제2회 직지소설문학상 대상수상작 <불멸의 꽃>     ©김명희(시인 .소설가)

 

 

 

 

고려역사장편소설 [불멸의 꽃] 제61회

챕터19 <다시 살아난 용광로> 제1화

 

 

▲ 제2회 직지소설문학상 대상수상작 <불멸의 꽃> 챕터19 간지 표지  © 김명희(시인 .소설가)

 

 

 

 

 

 

“망이야! 당장 시작해!”

 

최하가 부르자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망이라는 자가 영감을 새끼줄로 묶었다.

 

“내 부탁을 부디 잊지 말게……. 자네를 믿겠네…….”

 

말을 마친 영감은, 그자가 이끄는 대로 몸을 맡겼다. 망이가 뜨거운 화롯불을 움막 중앙으로 끌고 왔다. 방금 전까지 개고기 내장을 걸쳐 화롯불에 구웠던 인두를 망이가 손에 집어 들었다. 그는 인두 손잡이에도 가는 새끼줄을 촘촘히 감았다. 손으로 강하게 움켜잡았을 때 미끄럽지 않게 하려는 의도 같았다. 인두는 벌겋게 달궈져 있었다. 그렇게, 망이가 다가왔다.

 

“자. 준비 됐시다. 차마, 뜬 눈을 지질 수는 없으니. 눈 감으슈.”

 

“으흐하하……!”

 

최하가 소름끼치게 웃으며 영감의 몸을 뒤로 꽉, 붙들었다. 입을 굳게 다문 영감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감은 눈에 뜨뜻한 열기가 서서히 다가옴이 느껴졌다. 그 열기가 눈에 가까울수록 붉은 빛이 감은 눈 속으로 얼비쳤다. 인두의 붉게 달궈진 열기가 영감 눈 속으로 점점 뜨겁게 얼비쳐들었다. 영감은 긴장한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순간 침을 꿀꺽, 삼켰다. 영감 뒤통수를 끄잡은 최하 손아귀에 엄청나게 거센 힘이 바짝 조여졌다. 올 것이 왔다.

 

‘치지-직, 치이-익!’

 

“헉! 뜨흐아악-! 아아-악! 으으-읍! 악! 흐읍-아-악! 학-! 헉-!”

 

영감이 뒤로 강하게 묶인 손과 허벅지를 부르르 떨었다. 뜨겁게 눈을 지져대는 고통으로 인해 영감은 숨조차 쉴 수 없었다. 망이라는 자는 아무렇지 않게 영감의 눈 상태를 봐가며 꼼꼼하고 확실하게 동공을 뭉그러트리며 지져댔다. 영감의 눈두덩에서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솟아올랐다. 살갗이 타서 생긴 기름인지 진물인지 모를 액체가, 영감의 얼굴로 탁하게 흘러내렸다. 너무 강하게 입을 악물은 나머지 영감의 입술에서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방금 전 개의 내장에서 번진 피비린내와, 영감의 눈에서 기름과 살갗이 타는 노린내가 한데 뒤섞여 역겨운 냄새가 누추한 움막 안에 가득 떠다녔다.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이를 악물고 참던 영감의 머릿속으로 무수한 영상이 떠올랐다. 오래전 한 피를 나눈 최하와 얽히고설킨 애증과 오해들……. 금속활자를 연구하다 최하의 보복으로, 자신이 한쪽 눈을 잃었던 용광로 뜨거운 쇳물사고의 순간들……. 묘덕아씨의 이마에 맺혔던 뜨거운 땀. 왜소한 몸집으로 금속활자를 완성하기 위해 목숨까지 불사르던 지치지 않는 그녀의 열심……. 이 모두가 그림처럼 영감의 뇌리 속을 스쳐갔다. 영감은 처음에 몇 번 고통의 비명을 질렀을 뿐, 더는 기척이 없었다. 극한의 고통에 이르자 그는 기절했고 전신은 맥없이 늘어졌다. 영감 얼굴에서 바닥으로 핏물이 ‘똑. 똑.’ 규칙적으로 떨어졌다. 잠시 움막 안에 팽팽한 적막이 흘렀다. 기절한 영감 바짓가랑이 사이에서 누런 오줌이 소리 없이 흘러 발목을 적셨다. 움막으로 들어온 겨울햇살이 바닥에 흥건한 오줌을 투명하게 비췄다. 오줌에서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솟아올랐다.

 

‘퉤!’

 

“한심하구 독한 영감탱이! 저깟 서책이 뭐라구! 저깟, 개두 안 물어갈 종이나부랭이에! 하나 남은 제 눈을 다 걸다니! 킬킬킬.”

 

기절한 영감을 한번 쳐다본 최하가 재수 없다는 듯, 움막 바닥에 침을 뱉고 밖으로 휑하니 나가버렸다. 망이는 움막 안에서 영감이 깨나길 기다리며 화롯불을 쬐다가 하품을 했다. 한참 후, 영감의 정신이 돌아왔다. 그가 정신을 차려보니 멀쩡했던 남은 눈이 천으로 둘둘 말려있었다. 망이가 영감이 깨난 것을 확인하고 밖으로 나가 최하를 불러왔다. 최하 손에는 방금 깎아 만든 지팡이가 하나 들려있었다.

 

“해지기 전에 떠나슈!”

 

최하가 지팡이를 영감 손에 거칠게 쥐어주었다.

 

“나가서 영감 말에 타면, 저 눔이 객주까지는 데려다 줄 거유! 그 후부턴 알아서 가슈!”

 

“…….”

 

“서책은 영감 걸망에 넣어 말안장에 걸어 뒀시다! 딱 보름 후 주자소로 찾아갈 거요! 그 때 약조대루 정산하는 걸루 하겠시다!”

 

“…….”

 

비틀거리며 안간힘을 다해 일어나는 영감 뒤로 최하의 음성이 들려왔다.

 

“흠……, 날 너무 원망은 마슈! 킬킬킬. 이건 영감이 택한 거유. 야, 밖으루 데리구 나가!”

 

망이라는 자가 영감을 의자에서 부축했다. 영감은 엄청난 고통으로 밀려드는 신음을 이를 악물고 삼켰다. 금속활자장 최영감, 그가 이젠 장님이 되어 지팡이에 의지한 채 움막 밖으로 나갔다. 객주에 다다른 영감은 그곳에서 마부를 하나 사서 그의 뒤에 타고 고통 속에 오래오래 흔들리며 주자소로 돌아왔다.

 

 

 

 

 

< 19. 다시 살아난 용광로 >

 

1

 

영감의 말을 다 들은 묘덕은 흐느껴 우느라, 말을 잇지 못했다.

 

“허허허. 아씨……. 제발 그만 우시오.”

 

영감의 목소리에 허탈함이 묻어났다.

 

“흐흑! 영감님……. 이건 정말 말도 안 됩니다……. 어떻게……. 어떻게…….”

 

“허허허. 나는 괜찮다 하지 않소. 사실 그동안, 한쪽 눈만 덩그러니 외짝으로 남아서……. 물건을 잡으려면 거리조절도 잘 안되고……. 허허허. 조각칼에 손도 많이 베이고……. 허허허, 실수도 잦고 영 시원찮았는데……. 이제 두 눈 다, 속 시원히 멀어버렸으니. 물건 집다 초점 흔들릴 일도 없고, 세상 뵈는 것이 없으니 마음 시끄러울 일도 없고……. 암흑처럼 고요해서 아주 딱……. 좋소이다. 허허허.”

 

“흐흐흑! 안 돼요. 안된단 말입니다……. 흐흑……. 아……!”

 

묘덕은 너무 가슴이 아프고 괴로워 견딜 수가 없었다.

 

“아씨. 제발……. 그 고운 얼굴로, 나 때문에 더는 울지는 마시오. 부탁하오…….”

 

그 순간 영감은 그녀를 안심시키려 보이지 않는 눈으로 작업대로 다가가 그 위로 손을 더듬어보였다.

 

“자……. 보시오. 나는 잘 할 수 있소. 눈 한쪽마저 없어졌지만 이 주자소에서 벌어먹는 일엔 하나도 불편함이 없소. 아씨, 자 나를 보시오. 작업대 위에 뭐가 있는지, 교탁 위엔 또 뭐가 있는지……. 뒤란에는 또 뭐가 어디어디 있는지 나는 세세히 다 알고 있다오. 자, 아씨 나를 보시오. 이건 조각칼이오. 이건 송곳이고. 이……, 이건. 이건…….”

 

‘툭, 쪼르르륵……!’

 

활자장 영감이 작업대 위의 값비싼 유연묵을 건드려 바닥으로 쏟아져 흘러내렸다. 그는 그것을 전혀 모른 채 여기저기 손을 더듬고 있었다. 장님이 된 그가 오히려 슬피 우는 묘덕을 위로하려 애를 썼다.

 

“이건. 이건……. 아, 그래! 이건 끌 칼이고…….”

 

“네, 영감님. 잘 아시네요……. 끌 칼, 맞아요.”

 

그것은 끌 칼이 아니었다. 영감이 손을 연실 더듬거렸다. 떨리는 손끝을 애써 진정하려는 영감이 그녀는 너무 가련했다.

 

“이건. 이건……, 서책을 오침 법으로 묶을 때 쓰는 삼끈…….”

 

“거기, 네 맞아요. 삼끈이에요……. 흐흐흑.”

 

“허허허. 거보시오. 잘 하지 않소. 그러니 아씨……. 제발, 더 이상 나로 인해 울지 마시오.”

 

“영감님, 그만! 흐흑……! 영감님……. 그만 하세요…….”

 

“아씨. 제발이지 저 때문에 울지 마시오……. 부탁이오…….”

 

묘덕은 눈물을 훔치며 영감 몰래 다가가 작업대 위에서 바닥으로 쏟아진 유연묵을 닦았다.

 

“네, 영감님……. 저 안 울게요. 그만하세요. 알았어요. 영감님, 저 울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제발 그만하세요. 흐흐흑.”

 

“아씨……. 그래요. 나로 인해 울지 마시오. 우리는 이 나라를 위해 울어야 하오. 굶주리고 원나라놈들에게 개만도 못하게 맞아죽고 끌려가 노리개가 되어 죽어가는 백성들을 우해 울어야 하오, 그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그리고 부처님의 선업을 위해. 이깟 눈알 하나……, 마저 없어졌다고 무에 그리 슬퍼하시오……. 오래전 석가모니 부처님과 제자 아난다가 나눴던 보시에 대한 대화를 아씨도 아시지 않소…….”

 

“네, 알고 있습니다…….”

 

묘덕이 석가모니 부처님과 제자 아난다가 선문답으로 나눴던 보시바라밀의 실천 게송을 천천히 나지막하게 읊었다.

 

“베풀기 어려운 것을 ‘참된 자는’ 베풀고, 행하기 어려운 것을 ‘참된 자는’ 행하나니, 참되지 않은 자들은 따라하지 못합니다. 참된 자들의 법은 실로 따르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자들과 참되지 않은 자들의 태어날 그곳은 서로 각각 다릅니다. 참되지 않은 자들은 지옥에 태어나고 참된 자들은 바르게 천상을 향합니다.”

 

“아씨. 바로 그거라오……. 나는 부족하지만 내게 있어 그나마 가장 소중한 것을 부처님께 드렸다 생각하고 있소이다. 죽어 흙으로 돌아갈 몸. 이제 내가 그 눈을 쓴다 한들 얼마나 더 쓸 수 있었겠소……? 그 눈이 내게 성하게 있었다면 내 앞길 하나만 겨우 밝혔을 것이나. 이제 그 눈과 바꿔온 저 서책으로 귀한 주자를 만든다면. 장차 억겁의 세월 속에서 무량대수의 속세 중생들이 활자를 통해 지식과 불법을 알고 그 속에서 새 길을 찾고 꿈을 찾게 될 것이오. 그런데 이깟 내 눈 하나가 뭐 그리 대수겠소. 아씨, 아니 그렇소? 또한 이번에 만약 그 서책으로 인해 내가 그자와 다시 원수를 맺게 된다면, 그자의 후손이 내 후손을 해하고. 내 후손이 또 그자의 후손을 해하고 소중한 한 생을 미움과 피의 복수로 허비해야 할 터인데 그리 되도록 놔둘 수는 없었소이다. 나는 할 수만 있다면 이 한 몸 내 줘서라도 모든 현생의 악연을 풀고 싶었소. 그러니 아씨는 이제 그만 슬퍼하시고, 어서 서책을 펼쳐놓고 금속활자 주자를 다시 시작 하시오. 그래야 뜨거운 인두에 형체마저 사라진 내 한쪽 눈도 더 큰 의미를 되찾을 것 아니겠소? 아씨……. 어서요……. 내 눈 하나가 본래 그대로 남았다면, 내 앞길만 비추는 하찮은 빛이었겠으나. 그 눈에 대한 집착을 내가 모두 버렸으니. 그 값으로 장차 더 많은 빛이 금속활자로 태어나 우리 후손들이 삶을 살아갈 때, 우매하고 어두운 길로 가지 않게 해 줄 것이오. 난 그리 믿고 싶소이다.”

 

묘덕은 한참 울다 영감의 말을 듣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그래! 힘을 내자……. 영감님의 고통이 헛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2

 

그날부터 묘덕은 한동안 집에 가지 않았다. 

 

 

 

 

 

 

-> 다음 주 토요일 ( 3/7) 밤, 62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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