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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직지소설문학상대상수상작 [불멸의 꽃] 소설 연재 -60-

고려역사장편소설 [불멸의 꽃] 제60회 챕터18 <한쪽 눈> 제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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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희(시인 .소설가)
기사입력 2020-02-22

 

 

제2회 직지소설문학상대상수상작 [불멸의 꽃] 소설 연재 -60-

 

 

▲ 제2회 직지소설문학상 대상수상작 <불멸의 꽃>     ©김명희(시인 .소설가)

 

 

 

고려역사장편소설 [불멸의 꽃] 제60회

챕터18 <한쪽 눈> 제4화

 

 

▲ 제2회직지소설문학상대상수상작 <불멸의 똧> 챕터18 간지 표지     ©김명희(시인 .소설가)

 

 

 

 

“이보게! 그건 아니 되네!  난 이미 오래전에 다른 이와 약조한 일이 있고, 그 약조를 지켜야 하네. 그러기 위해선 그 서책이 반드시 필요하네. 또한 자네가 그 서책을 간악한 원나라에 넘겨준다는 것은 더더욱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일세. 선조들이 목숨과 바꿔가며 위험한 실험을 불사해 기록한 중요한 비법서를 그렇게 돈 몇 푼에 넘겨준다면 후손들의 장래를 팔아먹는 행위와 뭐가 다른가?”

 

“이봐! 영감! 거, 내 앞에서 역겨운 벼슬아치 냄새 풍기며 훈육하려 들지 말구. 냉큼 왔던 길로 곱게 떠나시지? 그게 그나마 얼마 남지 않은 영감 명줄 보존할 방법일 텐데……?”

 

그자가 뜨거운 인두를 들어 올리더니 그 위에 걸쳐졌던 개의 내장을 질겅질겅 뜯어먹었다. 내장은 아직 설익어 핏물이 흥건했다.

 

“그럼, 내가 자네에게 부탁 하나 하겠네.”

 

“잇히히히. 부탁? 고귀하신 영감님이 거지 쓰레기 같은 나한테 부탁씩이나? 그래 그게 뭐요?”

 

인두에 붙은 개의 내장을 뜯다 영감을 돌아보는 그자의 입 주변에 개고기 핏물과 기름이 번들거렸다. 그가 빈정거리며 낡은 교탁에 박힌 식칼을 다시 뽑아들었다.

 

“내게 조금만 시일을 주게. 그 서책을 내가 다시 가져가 시일 안에 사용하고 돌려줌세. 나는 이제 그 서책에 아무 미련이 없네. 그리 해 줄 수 없겠나?”

 

“낄낄낄! 내가 영감을 어찌 믿구? 더구나, 사흘 후 명나라 쪽 상인들과 거간꾼과 만나 넘겨주기로 하고 선금을 이미 받았는데, 그건 무시하고 지금 이 서책을 돌려 달라? 영감! 내가 바본 줄 아슈? 그리는 못 하겠시다!”

 

그자는 이빨에 낀 개의 내장 찌꺼기를, 검게 때가 낀 엄지손톱으로 후벼 파며 빈정거렸다.

 

‘쿵……! 쿵……!’

 

밖에서는 이따금 손도끼 내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망이라는 자가 털을 끄슬러 손질한 개의 몸통을 토막토막 절단하는 소리였다. 영감은 그 소리가 왠지 천둥소리처럼 소름끼쳤다.

 

“이보게. 그럼 내가 우선 서책을 빌려가고 명나라에서 자네가 못 받게 될 잔금과 서책을 나중에 함께 돌려주면 안 되겠나? 그 후 자네가 알아서 그 서책을 처분하든 팔아먹든 상관치 않겠네. 어떤가……?”

 

‘슉-! 파바밧! 쾅!’

 

그가 또 다시 식칼을 날렸다.

 

5

 

칼은 순식간에 날아가 움막 판자벽에 꽂혔다. 그자의 눈이 늑대의 그것처럼 돌변했다. 성미가 꽤나 급해보였다.

 

“아! 니미럴! 그러니까! 내가 영감을 뭘 믿구! 서책을 다시! 빌려 주냐구! 믿을만한 걸 말해 보라구! 주고받는 거래 말야! 거래! 거래가 뭔지 모르슈?”

 

“흐으음……. 알고 있네.”

 

영감은 고개를 숙이고 골똘히 생각했다. 이렇다 할 묘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영감이 최하를 향해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럼, 자네는 내가 어떻게 하면 나를 믿고 그 서책을 내게 빌려 주겠는가.”

 

그자가 다시 아수라처럼 웃으며 곁눈질로 영감을 노려봤다. 웃을수록 최하의 얼굴은 괴물처럼 일그러졌다.

 

“영감이 말해보슈. 어차피 내가 요구하면 더 골치 아파 질 테니까.”

 

“아닐세. 자네가 원하는 조건을 말해보게.”

 

“그래? 킬킬킬. 내 조건을 들으면, 조건을 내게 물은 것을 영감은 몹시 후회할 텐데……. 괜찮수?”

 

“……. 그게 뭔지 말 해 보시게.”

 

“음히히히! 핫하하하! 그래? 그럼 그러지. 서책 사용기간은 딱! 보름! 조건은 내가 못 받게 될 명나라 몫의 잔금 두 배 금액과 영감의 남은 한쪽 눈! 어떻소? 후후훗!”

 

“뭐, 뭐라고……?”

 

“어허! 이거 왜이러시나? 영감이 먼저 내게 조건을 말해보라 한 걸 그새 잊으셨수? 어?”

 

“어떻게, 그…… 그런…….”

 

“이 봐, 영감탱이! 나 최하야! 내가 누군지 그새 잊었수? 나두 영감 덕분에 보기 좋게 요 모양 요 꼴이 되었는데. 영감은 그동안 유능한 활자장 행세하며 대접받고 호의호식 했으면 그것으로 충분히 됐잖아?”

 

“그건. 자네가 오해일세! 자네가 다친 건, 자네가 연독에 대한 준비를 제대로 못한 결과로 생긴 사고란 말일세. 내 잘못이 아니야. 자넨 그 때 내가 자네를 해치려 음모를 꾸민 것으로 잘못 안 모양인데. 나는 절대 그런 짓 하지 않았네! 난 단 한번도 자네를 해친 적도, 해치려 한 적도, 해칠 이유도 없네.”

 

“영감, 거! 다 시끄럽구! 이젠 서로 마지막 거래가 될 터이니. 공평하게 주고받는 거래가 되어야하지 않수? 음힛히히! 어쩔 거유? 내 조건대로 할 거유, 말 거유?”

 

“다른…… 방.”

 

“없수다! 다른 방법은 없어! 이만 얘긴 끝났으니. 거래할 맘 없으면 가슈!”

 

‘큼! 쿠웨엑! 퉤!’

 

그자가 신경질적으로 가래침을 모아 이번엔 화롯불에 뱉었다.

 

“…….”

 

영감은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서 있었다. 잠시 후 영감이 다시 힘겹게 입을 열었다.

 

“……. 이유가 뭔가?”

 

“이유? 킬킬킬! 뭔 이유?”

 

“난, 오래전 자네 덕분에 이미 한쪽 눈을 잃었건만. 이제 와서 자네가 또 내 남은 한쪽 눈까지 가져가려 하는 그 이유 말일세…….”

 

“음힛히히! 아! 그 이유? 낄낄낄. 그거야 뭐. 영감이 남은 한쪽 눈도 장님이 돼야 그 서책을 갖고 있어두 아무 짝에두 쓸모없을 거 아뉴? 다른 팔이나 다리 하나를 잘라내는 것보다야 나는 훨씬 믿을만한 요구 아닌가? 팔이나 다리 하나 잘라내 봐야. 남은 사지로 이 서책을 교본삼아 또 금속활자를 시도 할 테구! 그럼 내겐 이 서책이 안 돌아올 수도 있겠지. 안 그래? 힛히히히.”

 

“내, 약조한 것 하나만 지키고 나면 이 서책은 반드시 돌려준다 하지 않는가.”

 

“이 썅! 그러니까! 내가 영감 뭘 믿고 이 서책을 순순히 내주냐구! 앙? 어렵게 구한 이 서책을! 명나라에 넘기기만 하면 남은 인생 걱정 없이 밥술 뜨며 살 텐데. 내가 미쳤수? 그런 대가도 없이 무모한 짓을 하게!”

 

“…….”

 

영감은 생각했다.

 

‘묘덕아씨는 앞으로 남은 무수한 젊은 생까지 모두 걸고 저 주조법을 이루려 한다. 그것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부처님 광명과 자비가 가득한 말씀을 세상에 두루 나누기 위해서. 그리고 그토록 자신이 아끼고 존경하는 분을 위해서. 그 누구도 아닌 아씨 스스로와 맺은 약속을 위해서. 그렇다면 나는 무엇인가. 나는 살만큼 살았다……. 저승이 문 앞인 지금의 내 삶에서 최소한 내 입으로 약조한 그것만큼은 지켜내야 하지 않는가……. 그 약조를 지키려면 저 서책은 반드시 필요하다. 난 반드시 저 서책을 이번에 갖고 가야만 한다.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영감이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는 입을 굳게 다문 채 두 주먹을 꽉, 쥐었다.

 

‘털썩!’

 

영감은 최하 앞에 두 무릎을 꿇었다.

 

“그럼……. 어서 자네 원대로 하시게. 그것만이 저 서책을 오늘 내가 가져갈 수 있는 길이라면…….”

 

“뭬야? 하, 하겠다구? 하나 남은 그 눈을 내놓으면서까지? 영감 정신 돌았수?”

 

6

 

영감이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이봐 영감, 정신 돌았어? 저깟 낡아빠진 책 하나에 마지막 남은 그 눈을 걸겠다? 킬킬킬”

 

“난 정신 멀쩡하네. 흐으음……. 나는 준비되었으니, 어서 자네 원대로 하시게…….”

 

“흠, 좋수! 내 원망 마슈! 자, 그럼 말미는 딱 보름! 보름 후 서책과 함께 명나라 사신에게 못 받는 잔금의 두 배를, 영감이 대신 내게 줄 것! 또 하나! 내가 영감을 믿고 서책을 내주는 조건은 당신 눈을 영원히 앞을 못 보도록, 지금 인두로 지지는 것이오! 난 그래야만 영감이 다시 저 서책을 내게 돌려줄 것으로 믿을 수 있으니까. 자! 이 세 가지가 내 조건이요! 됐수?”

 

“알겠네. 어서 시작하시게…….”

 

“킬킬킬, 야! 망이야! 들어와 봐!”

 

개고기를 손질하던 망이라는 자가 손에 피 묻은 도끼를 든 채 움막 안으로 쓰윽 들어왔다.

 

“야! 저 영감이 눈을 내주고 서책을 빌려 가시겠단다. 킬킬킬. 어서 준비해!”

 

망이가 최하의 말이 떨어지자 화롯불에 불쏘시개와 나무 조각을 더 가져다 얹었다.

 

‘타다닥……!’

 

잘 마른 나무 조각들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타올랐다. 불이 나무에 붙어 활활 타오르자 망이가 곧바로 인두를 불 속에 깊이 파묻었다. 인두가 더 뜨겁게 달궈지길 기다리며 망이는 다시 밖으로 나갔다. 망이, 그 자는 말 수가 거의 없었다. 최하의 말이 끝나자 표정하나 변함없이 아무렇지 않게 순서대로 행동에 옮겼다. 밖에 있던 나무의자를 가져와 영감을 거기에 앉혔다. 망이의 손에는 굵은 새끼줄이 들려있었다. 무표정해 더욱 섬뜩한 그가 영감이 앉은 의자로 다가왔다.

 

“영감, 지금부터 몸을 의자에 단단히 묶을 거유. 혹시 인두가 뜨거워 영감도 모르게 몸을 움직이면, 그땐 눈알만이 아니라 얼굴전체로 인두가 밀려나갈지도 모르니까.”

 

“잠깐……, 자네에게 마지막 청이 하나 있네.”

 

“청? 뭔데?”

 

“내가 보름 후, 그 서책을 약조대로 돌려주겠네만……. 그 후라도 절대 명나라로 넘기는 일만은 하지 마시게. 자네와 나는 언젠간 죽는다네……. 잠시 머물다 가는 인생에서 내 나라를 위해 큰 위업은 못 세울망정 나라와 후손의 앞날을 팔아먹어서야 되겠는가……? 그 서책은 이 나라 고려와 장차 이어질 우리 모든 후손들의 운명을 쥐고 있는 엄청난 열쇠일세. 정말 중요한 것이네. 부탁하네. 명나라로 절대 그 서책을 넘겨주어서는 아니 되네……. 이는 돌아가신 자네 조부와 자네 부친의 뜻도 다르지 않을 걸세. 약속해주시게…….

 

“그런 좆같은 개소리는 집어 쳐!”

 

최하는 말하는 영감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망이야! 당장 시작해!”

 

 

 

 

 

 

-> 다음 주 토요일 ( 2/29) 밤, 61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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