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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직지소설문학상 대상수상작 [불멸의 꽃] 소설 연재 -55-

고려역사장편소설 [불멸의 꽃] 제55회 챕터17 <사라진 금속활자비법서 > 제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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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희(시인 .소설가)
기사입력 2020-01-18

 

 

제2회 직지소설문학상 대상수상작 [불멸의 꽃] 소설 연재 -55-

 

 

▲ 제2회 직지소설문학상 대상수상작 <불멸의 꽃>     ©김명희(시인 .소설가)

 

 

 

고려역사장편소설 [불멸의 꽃] 제55회     

챕터17 <사라진 금속활자비법서 > 제1화

 

 

▲ 제2회 직지소설문학상 대상수상작 <불멸의 꽃> 챕터 17간지 표지  © 김명희(시인 .소설가)

 

 

 

 

 

1

 

금비는 그 후 여름이 다가도록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소문을 듣자하니 묘덕아씨의 굳은 사지를 푸느라 매일 산책과 모든 수발을 드는 중이라 했다. 어느새 묘덕은 자리까지 거뜬히 털고 바깥출입을 하는 모양이었다. 아직은 겨우겨우 발을 내딛는 정도라지만 놀라운 변화였다. 그녀가 깨어나 처음 거울을 보고 나흘을 울었다는 이야기도 영감에게 전해졌다. 영감은 오래 마음이 젖어 힘겨웠다. 어느 새 여름도 다 가고 가을의 문턱에 다다랐다. 바람은 그 새 선선해 졌다. 주자소는 아직 문을 닫지 않았다. 영감은 묘덕이 완전히 회복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훗날 찾아오면 그나마 만날 곳이 이곳뿐이라 영감은 급히 내놓고 싶지 않아 차일피일 미뤄두고 있었다. 묘덕이 주자소를 제 발로 걸어 찾아온 것은 초가을이 다 되어서였다. 쌀쌀한 바람에 진눈개비가 날리던 날이었다. 금비의 손에 의지해 묘덕이 주자소로 들어섰다.

 

“영감님…….”

 

“아하이구! 허허허! 아씨! 아씨가 이 먼 길을 다……·! 어서 이리로……·.”

 

금비가 묘덕을 부축해 의자로 안내했다.

 

“영감님, 우리 아씨 어떻습니까요? 대단 하시쥬?”

 

“그래, 금비야. 정말 놀랍구나. 아씨. 다시 소생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참으로 장하시오.”

 

묘덕을 걱정했던 영감의 눈시울이 뜨겁게 젖었다. 그는 얼른 딴 곳을 바라보았다. 묘덕이 영감의 마음을 모를 리 없었다.

 

“영감님 덕분입니다. 금비에게 그간의 일을 모두 들었습니다. 영감님이 아니셨다면 제가 이렇게 다시 살아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감사인사를 드려야겠기에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별말씀을 다 하시오. 아씨가 사고를 당한 것은 다 이 못난 늙은이 때문이오. 저는 그런 말 들을 자격이 없소.”

 

“아닙니다. 영감님……. 영감님이 그런 자책을 하실까봐 제가 왔습니다. 그날의 사고는 영감님 탓이 아닙니다. 분명 제 잘못이었습니다. 그러니 영감님 제발 자책하지 마세요. 그것을 저는 원치 않습니다. 영감님 부탁드립니다.”

 

“흐으음. 알겠소이다. 아씨 마음이 한시라도 편하길 저는 바랄뿐이오. 그게 아씨 뜻이라면 저는 따르겠소이다.”

 

묘덕이 힘겹게 일어나 뒤란으로 향했다. 영감이 묘덕의 앞을 가로막았다.

 

“아씨. 이곳은 이제 열지 마시오. 끔찍한 기억이 두렵지도 않소? 뭐 하러 그 안을 다시 보려하시오?”

 

“영감님, 제게는 가장 소중하고 가장 특별한 공간입니다…….”

 

“나는 꿈에도 다신 열어보고 싶지 않은 곳이오. 금속활자고 뭐고, 두 번 다시 생각조차 하기 싫소. 그러니 아씨도 이젠 마음 접으시오. 이제 곧 이 주자소도 다른 이에게 넘어갈 거요.”

 

“영감님, 저는 그럴 수 없습니다. 이 주자소를 다른 그 누구에게도 절대 내어줄 수 없습니다. 제가 오래전 말씀드린 것 기억 하시지요? 금속활자 완성은 제 생에 처음이자 마지막 소원이라고…….”

 

“그것 때문에 죽었다 다시 살아난 지금도, 아씨는 그것을 기억하고 싶소?”

 

“그럼요……. 제가 사경을 헤매면서도, 꿈속에서조차 저는 용광로에 불을 피웠고 그 불을 한 시도 꺼트려 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게 꿈속에서 간절하게 금속활자를 만들다 어느 날 다시 깨어났습니다.”

 

“허허…… 세상에! 아씨!”

 

영감은 너무 놀라 할 말을 잃었다.

 

2

 

묘덕이 어색한 발걸음을 옮겨 뒤란을 열었다. 영감과 금비가 불안스레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이따금 쓰러질 듯 했으나 묘덕은 꿋꿋이 발을 옮겼다. 그 안의 장작 하나 쇳덩이 하나……. 모든 재료들을 몸소 손으로 만지며 애틋해 하는 그녀를 보며 영감은 길게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묘덕은 오랫동안 영감을 설득했다. 영감은 그녀의 뜻을 꺾을 힘이 없었다. 겨울이 깊어진 후 영감은 묘덕의 고집에 못 이겨 다시 활자실험을 강행했다.

 

“아씨. 저쪽에서 거푸집을 하나 더 가져다주시겠소?”

 

“또 다시 해보시게요?”

 

“그렇소. 열 번 백번이라도 방법을 달리해서 해봐야 해결책이 나오지 않겠소?”

 

묘덕이 다시 잘 말려놓은 거푸집을 영감에게 가져다주었다. 영감이 그것을 용광로에 넣고 거푸집 속의 밀랍을 녹여 밖으로 쏟아냈다. 영감은 거푸집 속에 남은 한 방울마저 모두 비워냈다.

 

“자, 아씨. 저쪽 두 번째 용광로에 올려놓은 작은 도가니에 든 쇳물을 좀 가져다주실 수 있겠소?”

 

“예.”

 

“뜨거우니 조심하셔야하오.”

 

그녀의 발걸음은 사고 후유증에서 아직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이따금 다리를 절었다. 묘덕은 쇳물이 든 작은 도가니를 천천히 집게로 들어 옮겼다. 팔에 힘이 없어 쇳물을 엎지를까 긴장한 두 손이 파르르 떨렸다. 행여 바닥에 쏟을까 조심하며 침착하게 그것을 영감에게 가져갔다. 영감이 도가니에 든 쇳물을 주형틀에 기울여 천천히 붓기 시작했다. 그 일을 모두 마친 영감은 묘덕과 작업실로 들어가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자. 이제 이것이 다시 굳어봐야 그 결과를 알 것이오. 아까처럼 붓자마자 입구부터 굳어버리지는 않았으니 좀 더 지켜봅시다. 아씨. 피곤해 뵈는데 이만 돌아가시는 게 어떻소? 밤이 늦었으니 어서 가시오. 어차피 이것들이 굳으려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오. 내가 결과를 지켜보고 소식을 전하리다.”

 

“아닙니다. 지금 집에 가는 게 문제인가요. 금비에게 문단속 잘하라 일러두고 왔습니다. 어서 저 것이 식으면 주형틀에서 꺼내봐야지요.”

 

영감은 묘덕의 일그러진 얼굴을 볼 때마다 그의 가슴도 뭉개졌다. 그는 애써 내색하지 않으며 말을 이었다.

 

“주형틀 속에 든 쇳물이 식으려면 오래 걸립니다. 금방 식는 것이 아니오.”

 

“호호호. 저도 그간 봐서 잘 압니다. 영감님 제 걱정은 마세요. 저것이 어느 정도 굳는 것 좀 보고 나서 집으로 가겠습니다.”

 

작업대 위에서 그들은 며칠 전 식혀놓은 다른 것들을 살폈다.

 

“이상 하오. 분명히 합금의 비율도 맞고 용광로의 불빛으로 온도도 확인했는데…….”

 

“영감님. 아까 것은 잘 떨어지는 대신 주자들이 모두 찌그러졌는데, 이번 것은 주자들이 다 충분히 식었는데도 주형틀에서 아예 분리가 되지 않아요. 왜 그런 걸까요?”

 

묘덕은 밤을 꼬박 새서 무척 피곤한 안색이었다.

 

“글쎄올시다. 도무지 그 이유를 못 찾겠소이다.”

 

‘삐거억-’

 

그때 뒤란에서 이상한 기척이 들려왔다.

 

“이 무슨 소리요? 방금 무슨 소리 못 들었소?”

 

“글쎄요……. 문소리가 난 듯합니다.”

 

3

 

활자장은 급히 뒤란으로 나가보았다. 불을 환하게 밝히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탁! 후다다닥……!’

 

“게 누구냐!”

 

활자장이 호롱불을 높이 들고 환기구 밖을 내다보았다. 저 멀리 어둠 속으로 검은 그림자가 황급히 달아나고 있었다. 영감은 불길했다. 밖으로 나가 놈을 뒤따라갈까 망설이다 급히 뒤란 내부를 살펴봤다. 남원속현에서 구해온 도토와 지리산 피밭골에서 구해온 밀랍에 누군가 손을 댄 흔적이 보였다. 뭔가 정보를 알아내려 한 듯, 도토를 만진 손자국이 흙에 많이 남아있었고 바닥에도 일부 떨어져 있었다. 분명 누군가 이 안을 들어왔다 나간 것이 틀림없었다. 남아있는 자국으로 보아 남자 손이었다. 다행히 물량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영감은 뭔가 심상치 않음이 느껴졌다. 영감은 들판 쪽에서 유일한 통로인 환기구로 다가갔다. 반쯤 열어두었던 환기구 문을 닫았다. 그는 몹시 피곤한 안색으로 일어나 거처실로 들어갔다. 그는 책꽂이에서 낡은 서책 하나를 꺼냈다. 그 것은 바로 일전에 묘덕이 꺼내들다 영감에게 무안을 당했던 금속활자주조실험서(金屬活字鑄造實驗書)였다. 영감이 심각한 얼굴로 서책을 펼쳤다. 서책 안에는 친필로 적어놓은 글씨가 가득했다. 영감이 낡은 서책의 앞부분에서 순서를 확인하고 쪽수를 찾아 넘겼다.

 

“영감님. 이걸 그동안 영감님이 일일이 다 기록하신 건가요?”

 

“사실은……. 제가 기록한 것이 아니오.”

 

묘덕은 놀라 그 서책을 자세히 보았다.

 

“그래요? 그럼 누가 이 세세한 것을 다 기록한 것인가요? 네? 정말 놀라워요.”

 

“…….”

 

영감은 대답하지 않은 채 지면에 빼곡히 적힌 내용을 손가락으로 확인하며 읽어 내려갔다.

 

‘거푸집의 온도가 뜨거워야 공기가 차단되어 쇳물이 고루 잘 흘러가기 때문에, 거푸집에서 밀랍 활자와 밀랍봉이 빠진 직후 지체 없이 쇳물을 붓는다. 이때 거푸집은 평평한 모래 위에 올려놓고 쇳물이 흘러들 때 흔들리지 않도록 고정시킨다…….’

 

“음…… 다 맞게 했는데. 자꾸만 실패하는 원인이 무엇이란 말인가.”

 

서책을 훑어보던 영감이 거처실 의자에 기대어 잠시 눈을 감았다. 묘덕이 다시 뒤란으로 나갔다.

 

“아씨. 그거 식으려면 아직 멀었소……. 조바심 낸다고 될 일이 아니오. 나가신 김에 용광로에 불이나 끄시고 뒤란 환기구나 좀 열어두시오. 그래야 새벽 찬바람에 조금이라도 더 빨리 식을게요.”

 

“예. 영감님.”

 

묘덕이 뒤란의 환기구를 열어놓고 주형틀이 얼마나 식었나 보고 다시 거처실로 들어왔다. 영감은 이내 잠이 들었는지 기척이 없었다. 묘덕은 영감의 작업실 위에 가득 놓인 기구들을 구경하다 졸음이 몰려와 영감 맞은편 의자에 기대 잠시 눈을 감았다. 새벽녘 영감은 너무 추워 잠에서 깼다. 그는 환기구 문을 다시 잠그고 눈을 감았다. 그 후, 얼마를 졸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묘덕이 누군가 급히 흔들어 깨우는 소리에 일어났다.

 

“아씨! 아씨! 아씨!”

 

묘덕이 눈을 떠보니 영감의 안색이 창백했다.

 

“영감님. 왜 그러세요?”

 

활자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 하오. 이럴 리가 없는데 어디에도 없소…….”

 

“뭐가요?”

 

“서책이! 어제 내가 갖고 있던 그 서책 말이오! 아씨 혹시 그 서책 만지셨소?”

 

“아니요. 영감님이 그 서책 만지는 것을 싫어하시는 듯해서 저는…….”

 

“아……. 그럼 그게 어디로 갔단 말인가. 대체 그 서책이 어디로 갔단 말인가.”

 

“영감님. 다시 잘 찾아보세요. 어제 영감님이 손에 들고 주무셨잖아요?”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없단 말이외다. 새벽에 일어나 다시 읽어보려 찾아보니 그 서책이 감쪽같이 없어졌단 말이오. 믿을 수가 없소.”

 

“그럴……리가요. 이 안에서 책이 없어졌을 리가 있나요?”

 

묘덕이 뒤란으로 나가보았다. 영감도 다시 뒤란으로 나왔다. 모든 것은 아무 일 없이 그대로였다. 영감이 급히 환기구 쪽으로 달려갔다. 영감의 눈이 번쩍 빛났다.

 

 

 

 

 

-> 다음 주 토요일 ( 1/25) 밤, 56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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