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월영의 [ 달의 노래 ] - 하루치의 행복

월영의 [ 달의 노래 ]

- 작게+ 크게sns공유 더보기

이순옥
기사입력 2024-02-21

 

 

하루치의 행복

 




月影 이순옥

 

 

종이집 한 채가 네거리를 가로질러 가고 있어요

느릿느릿 신호도 무시하고 건너고 있네요

피곤함이 달팽이처럼 무거운 퇴근길에

느닷없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모두 술래가 지나기만

숨죽여 기다립니다

삶은 소리 없는 전쟁터라지만

등에 진 짐이 버거워 꺾여버린 허리

땅만 보고 가기에 신호등의 의미를 비켜 가네요

 

저 폐지를 가득 채워 담은 노인의 등에

달팽이 집으로 실려 가는 리어카를 보면서

터무니없이 크게 보이는 내 자동차가

한없이 초라해 보이는 저녁입니다

 

답은 알 수 없지만

메아리처럼 남은 가슴 속 의문이 무겁습니다

 

지나온 세월만큼 깊은 눈 항아리

그곳에 깊게 팬 삶의 이랑

분노, 좌절, 희망이 깊은 눈에서 자동차 헤드라이트처럼

번뜩이는 걸 마주했지만 이젠 고요로 다듬어진 눈빛입니다

가족에 대해 책임져야 할

오래된 습관 같은 믿음이 낡은 리어카에 가득 실려있어요

 

입가에 스민 미소의 온도

1도 높아진 걸 자각하지 못했었는데

오늘 밤 저분의 미소를 이해했어요

마주치는 등 굽음이, 땅만 내려 볼 수밖에 없는 허리 꺾임이

볼 때마다 색깔도 모양도 같아 보였지만 오늘,

그 한 조각이 내 안에 들어와 문이 열고

리어카에서 빛을 뿜고 있는 등대를 보여주네요

 

리어카에 폐지가 가득 실리면 정지되었던 시간이 흐릅니다

환한 빛이 있는 곳으로 끌어갑니다.

 

▲     ©이순옥

 

광고
광고
광고
댓글

i

댓글 수정 및 삭제는 PC버전에서만 가능합니다.
URL 복사
x

PC버전

Copyright 강원경제신문. All rights reserved.